ㅣ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ㅣ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수많은 인생의 문제 앞에 우린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내길 원한다.
나무 의사라는 생소함과
나무를 의인화하는 어른이라는 낯섦으로
책은 시작되지만
작가는
30년간 나무 의사의 일을 하며 나무로부터 배우고
자신의 삶을 통해 살아낸 세월을
나무에 깊은 애정을 담아 이야기해 준다.
그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주위의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게 되고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나무 의사 유종영 작가는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며,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인 나무로부터
오랜 시간 같이 하며 배운
단단한 삶의 태도를 책을 통해 전해줍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예전보다 나무가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로수도 늘어나고, 조경을 신경 쓴 아파트나
집안에서 키우는 나무들이 점점 더 많아졌지만
그냥 전봇대를 대신하는 풍경이거나
도시의 삭막함을 가리는 존재 정도로만
여겨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종영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나무를 돌본 게 아니라, 실은 나무가 나를 살게 했다.”
천수천형千樹千形. 천 가지 나무에 천 가지 모양이 있다는 뜻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유일무이한 모양새는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중에서
그는 자신의 힘든 순간마다 나무가
어떻게 답을 주었는지,
나무가 기능적인 존재를 넘어
그 나름의 삶의 태도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그의 시선은 독자들에게도
나무를 새로운 존재로 보게 만듭니다.
작가는 책의 전반부를 통해 나무로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그다음 단계로
주변에 있는 친근한 나무들을 소개하여 책에서 읽었던 그 나무를
현실에서 무조건 마주치게 합니다.
마주친 나무는 책 속의 텍스트를 벗어나 안면이 있으니
이제는 절대 그냥 지나 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 나무와의 새로운 인연이 생깁니다.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이
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작가의 소개로 인연이 된 나무를
지나가는 길에 만나면
이제 그 나무는 단순한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고 가지와 잎을 살피며
안부를 물어줄 수 있는 친근한 존재가 됩니다.
나는 책 한 권을 읽고
동네 나무 지인들을 많이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나무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만일 딱 한 그루의 나무와 살아야 한다면 나는 붉나무를 택하고 싶다.
[무인도에 살게 된다면 데려가고 싶은 나무-붉나무] 중에서
특히, 작가가 ‘무인도에 살게 된다면 데려가고 싶은 나무’로 소개해
알게 된 붉나무는
내 삶의 가까운 곳에서 푸른 잎을 뻗고 씩씩한 외침으로
나를 반겨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땀을 흘리는 건축 현장의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체 자리를 지키는 붉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라”라는 푸시킨의 시구가 떠오른다. 삶의 음지를 양지로 바꾸는 건 결국 마음에 달린 일이므로 우리는 주어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즐겁고 씩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없이 일러 주는 듯하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아서 ‘내가 이 모양인 건 다 세상 탓이고 빌어먹을 환경 탓이고 남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녹색 게릴라 붉나무를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어떨까.
[무인도에 살게 된다면 데려가고 싶은 나무-붉나무] 중에서
여름에 만나 새 인연이 된 이 붉나무가 무더움을 같이 이겨내고
가을이 되어 팥알만 한 동그란 열매를 맺으며
천금목의 모습으로 비밀을 하나 더 알려준다면
나는 같이 기뻐하며 축하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의사의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해답을 찾는 이야기가
실재 삶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책 밖으로 나온 일상의 존재들을 발견하고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이 상호작용을 경험하며
책을 덮어도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에게
인생의 조언을 구하고 질문을 하고 배우며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종영/ 2019년 9월 27일/인문교양/300쪽
지혜를 찾는 자를 위한 나무주스를 吟味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