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최근 울주 이바구 공모전에 출품했던 시입니다.
비록 낙선했지만, 오늘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인데요.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이 시를 조심스레 공개합니다.
사냥도 못하는 손으로 돌을 긁다니
저건 굶지 않아 본 자의 짓
사람들은 손가락질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위는
우리를 더 오래
기억할 거라 믿었기에
불 피우는 법도
화살 깎던 감각도
물살을 읽던 눈빛까지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파도보다 깊은 날들
잡히지 않은 고래의 그림자
물 위로 뜨지 못한 죽음
물살에 씻겨간 아이의 마지막 숨결까지
그러니
새겨야 했다
바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더 믿을 수 있었다
밤이면
작은 불 옆에서
그날의 숨을
한 줄씩 파묻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지우려 해도
한 줄은
남는다는 걸
나는 사냥꾼이 아니었다
전사도 아니었다
나는
기억을 뼛조각처럼 엮어
물 위에 띄우는 자였다
혹시라도
너희가 다시 길을 잃게 된다면
이 바위에서
나의 흔적을 발견하기를
이 돌엔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이 있고
건너온 자들의 불빛이 있다
견딜 수 없다면
잠시
그 위에 등을 기대도 좋다
언젠가
내 흔적을 따라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리고
지금
너희가 그걸 보고 있다면
나는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 앞에 섰을 때,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흔적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지금도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왜 새겼는가에 대한 여러 설들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사냥법을 전하려 한 것이 아니라, "나, 여기 살아 있었노라." 그 사실 하나를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마음을 상상하며, 오늘의 언어로 그들의 기록을 이어 적고 싶었습니다.
이 시는 잊히지 않기 위한 누군가의 숨을 따라 제가 쓴, 또 하나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