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이냐고? 천만에!
때는 3년 전. 한낮에는 땡볕이,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딱 좋은 초여름 날이었다. 같이 살게 된 지 얼마 안 된 파트너와 야밤 자전거 라이딩을 하자며, 의기투합했다. 낑낑대며 자전거 두 대를 겨우 싣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새하얀 형광등 불빛 아래 너와 나. 너는 아래 위로 날 훑어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안 했어?”
(너의 시선은 정확히 나의 가슴을 향해 있었으나, 짐짓 모른 체하며) “뭘?”
“브라 말이야.”
“응? 안 했는데?”
“하아… 정말 너무 싫다.”
(여기서 잠깐, 나는 상의 탈의를 한 것이 아니다. 노브라 위로 짙은 보라색의 헐렁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렇다. 그가 "정말 싫다"며 내뱉은 깊은 한숨의 원인은 내가 상의 탈의를 해서도 아니요, 너무 쎈 형광등 불빛 때문도 아니요, 좁은 엘리베이터에 싣기는 심히 무거웠던 싸구려 자전거 탓도 아니었다. 바로 나의 노브라 때문이었다. 나는 한숨 발생 1초 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내 노브라의 역사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
나는 그때만 해도 ‘낮브밤노’의 생활을 보내던 시기였다. 낮에 회사 갈 때는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저녁 귀가 즉시 신발과 함께 브라부터 풀어버리는 일명 '유연노브라제'. 아마도 대부분 여성들의 생활 패턴도 비슷할 것이다. 다만 나의 노브라는 '집 안'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귀가 후 다시 외출할 일이 생겨도 나는 거의 노브라를 고수했다. (한 번 풀어버린 브라는 다시 채우는 게 아니거늘!) 더구나 그날의 자전거 라이딩은 운동 아니던가. 그 불편한 브라를 운동할 때마저 꽁꽁 싸매야 할 이유는 더욱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시 ‘엘리베이터 노브라’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내 분노의 내용은 이랬다.
“뭐가 싫어? 내가 브라 안 한 게 싫어? (손으로 가슴을 마구 뒤흔들며) 내가 이걸로 사람을 팼어? 뭘 했어? 너나 다른 누구한테 무슨 실질적인 피해를 끼쳤어? 브라가 여자한테 얼마나 불편하고 억압적인지 니가 알아?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안 좋게 보는 니 시선이 문제지, 내 노브라가 아니야. 니 시선부터 고쳐!”
나는 말미에 “정말 재수 없어!”라고 ‘빽’ 소리를 지르고는 뛰쳐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간만의 라이딩에 들떴을 싸구려 자전거 두 대와 자신의 한숨이 이 정도의 욕받이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듯 얼 빠진 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너는 뒤늦게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야, 일단 내가 미안해. 응? 응?”(뭐라? 일단? 그럼 이단은? 삼단은?)
“야 쫌! 이게 이럴 일이냐?" (먼저 "너무 싫다"고 말한 건 너거든?)
"그만 화 풀고 자전거 타러 가자!”(자전거로 한 번 맞아볼래?)
나는 한 번 더 “네 말마따나 너무 싫으니까 쫓아오지 마”라고 쏘아붙인 뒤, 거의 경보 선수의 속도로 그를 따돌렸다. 이날의 일화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금세 회자가 됐다. “(혀를 끌끌 차며) 너도 참 너다”라거나 “거 좀 부드럽게 말하지”, “마누라 가슴 누가 볼까 봐 그런 걸, 뭐 그렇게 빡빡하게 구냐?”까지. 여남을 초월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의 입장을 심히 이해해주었다. 내 입장은 분명했다. 내가 좀 재수 없게 말한 건 아는데, 내 가슴으로 니들이 이럴 일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친구들의 바람대로 조금은 부드러워졌을까? 이 사건을 계기로 나의 노브라 또한 한결 조심스러워졌냐고? 천만에! 나는 이날로 '낮노밤노', 아침-점심-저녁-밤-새벽까지 ‘24시간 완전 노브라’를 결심하게 된다.
-아무도 안 기다려도, 다음편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