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여성중앙> 2016년 7월호
정유정 작가가 신작소설 《종의 기원》으로 돌아왔다. 정작 궁금해진 건 정유정이라는 ‘특이종’이 어디서 기원했을까다.
에디터 성영주 Photographed by Seo Wonki
장소 협찬 명동 L7호텔(서울 중구 퇴계로 137/ 02-6310-1000)
작가 인터뷰는 어렵다. 우선 작가의 책을 전혀 읽지 않은 독자에게 그 작가를 옆집 아줌마 혹은 아저씨와 구분시킬 방도가 딱히 없다. 신작이 이렇게 ‘짜잔’ 나왔다는데, 이게 과연 왜 ‘짜잔’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을 거다. 그렇다고 4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일일이 설명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모든 제약을 안고도, 정유정은 꼭 만나야 했다.
정유정은 특이종이다. 아직까지 ‘누구의 영향을 받은 정유정’, 혹은 ‘정유정스러운 누군가’, ‘제 2의 정유정’ 같이 비슷한 부류를 엮어낼 수도 없다. 정유정은 오롯이 정유정 하나다. 《내 심장을 쏴라》부터, 《7년의 밤》, 《28》에 이어, 《종의 기원》까지. 거칠고 사나운 날 것의 묘사, 곱씹어 사색하게 하기보다 독자의 머리채를 탁 붙들고 이야기로써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법하며, 살인과 죽음, 악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서슴없이 잔인하고, 가감 없이 섬뜩하게 풀어낸다. ‘아니, 이 여자 도대체 뭐 하는 여자야?’ 할 수밖에 없어지는. 《종의 기원》 첫 구절을 보자.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 코가 아니라 온몸이 빨아들이는 듯한 냄새였다. 공명관을 통과하는 소리처럼 내 안에서 되울리고 증폭되는 냄새였다. (중략) 무슨 일인지 이해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예측하는데 천재적인 상상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었다. 꿈의 잔상도 물론 아니었다. 머리가 몸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어. 지금부터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발작억제제를 멋대로 끊어버린 대가. (중략) 약물중독자들은 대부분 환상을 쫓느라 약을 먹는다. 내 경우는 반대다. 환상을 얻으려면 약을 끊어야 한다. 끊은 지 얼마 후면 마법의 시간이 열린다. 약물 부작용인 두통과 이명이 사라지고, 오감이 내 젖꼭지도 딸 수 있을 만큼 예리해진다. 후각이 개 같이 예민해진다.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민하게 돌아가고 생각 대신 직관으로 세상을 읽어 들인다. 내가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낀다. 인간이 만만해진다.”
이쯤 되면 정유정은 독자가 만만해진다. 《종의 기원》은 ‘악인의 탄생기’다. 부유한 집안의 멀쩡한 청년, 그리고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이야기. 예부터 작가들에겐 각자 자신만의 테마라는 게 있다. 헤밍웨이의 테마가 ‘죽음’이었다면, 찰스 디킨스는 ‘가족’, 스티븐 킹은 인간 심연의 ‘공포’라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평생을 변주하며 작품을 썼다. 정유정에게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 그 중에서도 ‘악’이다. 1994년 100억대 자산가이던 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하고,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여자친구와 낄낄대며 웃고 떠들던 사이코패스, ‘박한상 사건’에 정유정은 본능적으로 끌렸다. ‘저걸 써야겠다.’ 그 열망은 40만부나 팔린 《7년의 밤》의 ‘오영제’로, 《28》에서는 ‘박동해’라는 악인으로 변주됐다. 그리고 지금, 《종의 기원》 속 ‘한유진’이다. 가장 달라진 점은 그간 늘 3인칭으로 존재해왔던 ‘악인’이 이제는 1인칭 ‘나’로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 악이 스스로의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찰자가 아닌, 화자로서 악인의 내면은 내내 불편하고, 불쾌하고, 섬뜩하다.
“전 악인, 나쁘게 되는 사람들이 가정환경이 불행해서, 성장과정이 어때서, 같은 해석은 너무 게으른 해석 같아요. 작품에서 오영제나 박동해라든가 다 부유한 집 출신이거든요. 본성의 타고난 악을 부모가 부채질하는 상황으로 그렸었죠. 그런 접근도 사실 불만족스러웠어요. 얘네들 마음 속에는 좀 더 내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3인칭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려 보이려니까 거기까지 표현이 안 되는 거죠. 그런 갈등이 있었는데, 그땐 제 능력이 악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릴 수 있을 만한 깜냥이 안 됐었어요. 막연히 언젠가는 써야지 하면서 이번에 히말라야 갔다 오고 마침내 결심을 하게 됐죠. 쓸 때가 됐다고. 막상 시작했는데 정말 너무 어려웠어요.”
정유정은 “이번에는 정말 사투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이야기를 통으로 세 번을 갈아엎었다. 각각 써낸 장소도 달랐다. 첫 번째 《종의 기원》은 아들이 유학 가 있는 오사카에서 썼다. 두 번째는 “새벽이면 잿빛 해무가 방까지 쳐들어오는” 남해 창선의 절벽 위 펜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다시 광주 집으로 돌아와 모든 연락을 차단한 채 완성했다.
작품을 쓸 때 정유정에게 가장 중요한 건 늘 체력이다. 《28》을 쓸 때는 지리산 해발 700m 암자에 머물면서 매일 16km씩 걸으며 호랑이와 맞서 싸우는 기분으로 썼다. 이번에는 수영을 배웠다. 수영선수인 주인공의 육체와 감각을 그대로 체험하려고 자그마치 3년 동안 헤엄쳤다. 다음은 정신적 싸움이었다. 작가는 평범한 도덕 교육을 받아온 ‘보통’ 사람으로서 철저하게 ‘악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했다. 개인의 세계관까지 깨는 경험. 정유정은 이를 갈았다. “내가 너 같은 새끼 한 번만 더 만나면 작가 못하고 죽겠다, 할 정도로” 진력을 쏟았다. 그렇게 ‘너 같은 새끼’는 서서히 ‘작가 자신’이 되어갔다. 1cm의 틈도 없이 밀착됐다가, 결국 굴복하고 그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생각보다 인간의 자아가 강해요. 우리가 이러면 막 무너질 것 같잖아요. 안 무너져요. 받아온 교육의 효과라는 게 엄청나요. 사이코패스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이유가 학습이 안 된다는 거예요. 제 소설에서 사이코패스들이 계속해서 등장했기 때문에 정신분석학 공부를 꾸준히 해왔거든요. 분석학, 심리학에서 나아가 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 범죄심리학까지 공부한 지 꽤 오래 됐고. 이 소설 쓰면서 범죄 프로파일러를 취재하고 우리나라 연쇄살인범과 외국 연쇄살인범 자료를 비교 분석했죠. 그러면서 느낀 건 외국에서 나타난 병폐가 점점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거예요. 전 그런 변화의 징후들을 세상에 알려주는 게 작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설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어요? 근데 소설을 통해 주위를 환기시킬 수는 있거든요. 이런 변화가 있는데 한번 같이 생각해보자. 불과 전체 인구의 2~3%밖에 안 되는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우리가 왜 읽어야 할까요. 그 2~3% 사이코패스가 저지른 일들이 우리 사회를 거의 쓰나미로 만들어버리니까요.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돼요. 옛날에 태풍 닥쳐오고 자연재해 일어날 때 정체가 대체 뭔지 모르니까 제사 지내고 하느님한테 빌고 그랬잖아요. 지금은 연구해서 대비책도 생기고 피해도 최소화시키잖아요. 이 사람들도 어차피 인간 탈을 쓰고 있으니까 같이 살아야 되는 존재예요. 우리는 몰라요. 앞집 청년이 그럴 수도, 학교나 같은 직장에 있을 수도 있어요. 얼마나 멀쩡하게 생겼어요. 이번 안양에 그 시화호 토막살인 한 친구 진짜 멀쩡하게 생겼잖아요. 유영철은 오죽하면 팬카페가 있겠어요. 강호순도 얼마나 잘생겼게요. 차 타고 ‘야 타’ 하면 탄대잖아요. 호감 가니까.”
소설의 배경으로 늘 가상의 공간을 창조해내는 정유정은 이번에 ‘군도’라는 신도시를 만들었다. 모델이 된 무대는 시화호. 거기에 아주 초창기의 송도신도시의 모습을 입혔다.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우후죽순 만들어진 신도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인적도 드물고 상업시설도 없는 외딴 베드타운. 정유정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케치북을 사서 집필실 한쪽 벽에 소설 배경 공간의 지도를 그려 붙여놓는 일이다. 방 한 켠에 그려진 작은 지도 안에서 살인마는 ‘신나게’ 살인을 해나간다.
“전 소설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있죠. 철학에 대해서, 인문학에 대해, 인간관계나 사회학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런 걸 주지적인 소설이라고 하죠. 또 하나는 생각할 것 없이 읽으면서 몸으로 바로 체험되는 소설이 있어요. 눈앞에 보이고 생생하게 느끼는 소설. 제 소설은 후자인 거예요. ‘시체가 여기 있고, 시체는 이렇게 저렇게 생겼어’라고 설명하는 건 주지적인 소설이죠. 제 소설은 독자에게 그냥 시체를 팍 안겨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유정 소설에는 으레 ‘영화적이다’는 평이 따라 붙는다.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가장 많이 팔린 《7년의 밤》은 이미 영화로 크랭크업에 들어갔고, (라인업이 무려 류승룡에 장동건, 송새벽, 문정희, 고경표 등이다.) 《28》에 이어, 이번 작품 《종의 기원》까지, 생생하게 펼쳐지는 묘사들이 영화에서 딱 탐내기 좋을 시나리오다. 영화를 노리고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 “영화 같다는 평은 괜찮지만 영화를 노리고 쓴다는 말은 자존심 상해요. 제 소설이 영화 같은 이유가 있어요. 전 인간이 무언가를 생생하게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감 중에서도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전 되도록이면 생각 안 하고 문장 읽으면 그게 즉각적으로 떠오르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써요.”
어릴 적부터 장날에 찾아오던 서커스단의 만담꾼에게 홀딱 빠졌던 소녀. 그를 따라 친구들을 모아놓고 썰 풀기를 좋아하던 이야기꾼 소녀는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에 못 이겨 국문과가 아닌 간호학과에 갔고, 일하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곤 남편에게 “우리 집이 생기면 다 때려치우고 글 쓴다”고 선포한 그대로, 결혼 6년 만에 다 접고 틀어박혀 소설을 썼다. 그렇게 등단 후,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유정은 “이것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복잡한 심정으로 부글부글 끓고, 온갖 감정의 격랑에 휩싸여서 ‘이게 대체 뭐냐’고 물음표를 찍게 만드는 이야기”가 소설 쓰기의 목표다.
“이게 소설이 되겠다, 안 되겠다 판단은 딱 하나예요. 이걸 보고 가슴이 설레야 돼. 연애 처음 할 때처럼 설레서 얼른 쓰고 싶은 것. 피가 끓는다고 하죠. 얘랑 얼른 동거동락 하고 싶어요. 그래야 쓸 수 있어요. ‘그냥 재미있겠는데?’ 정도로는 못 써요. 그럼 2년을 못 버텨요. 이번 건 3년 걸렸는데. 중간에 너무 힘드니까 그만 두고 딴 거 쓸까, 이렇게 되거든요. 욕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으면, 안 되면 안 될수록 더 하고 싶다는 생각. 로미오와 줄리엣도 말리니까 아주 죽을 때까지 가잖아요. 어떤 독자는 《종의 기원》으로 피냄새를 풍겨왔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사냥하는 소설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근데 전 사이코패스의 활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요. 악의 탄생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어떻게 저지르고, 경찰이 잡고, 그런 건 제 관심사가 아니죠. 그렇다면 본격 장르물이 되겠죠. 어떤 일본 작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문학이라는 건 양쪽 다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장르 소설 쪽에서 보면 제가 굉장히 불편할 거예요. 쟨 장르를 쓰는 것 같으면서 어느 순간 이상하고, 문단에서 보기에는 ‘쟨 장르 쓰는 거 아니야?’ 하죠. 양쪽에서 욕 먹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양쪽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있구나, 기분 괜찮아요(웃음). 이런 생각도 있어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 소설이 엄청 무섭고 불편하거든요. 근데 사이코패스가 이걸 읽었다고 생각해보세요. ‘뭐 이런 시시한 새끼가 다 있어?’ 할 수도 있단 말이죠. ‘우리가 이렇게 갈등이 많고 우유부단 하단 말이야?’ 하면서. 제 소설 때문에 양쪽이 다 기분 나쁜 거죠. 하하하.”
보통 작가들이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문장에 도취되기 쉽다면, 정유정에게는 사건과 관계 없는 아포리즘이나 아름다운 문장은 그냥 ‘쓸 데 없는’ 문장이다. 제 3자가 되어 문장을 팍팍 쳐낸다. 그게 작품에 숨 쉴 틈 없이 끌려가듯 속도감을 더한다. 아이러니한 건, 문장을 사랑하는 문학 독자도, 스릴러 장르물을 좋아하는 마니아도 정유정의 소설을 읽는다는 거다. 양쪽 다를 불편하게도, 그렇지만 욕할 수 없게도 만드는 힘이 정유정에게는 있다.
“예전에는 믿지를 못했어요. 독자들이 무슨 내 이름을 기억하고 기다릴까. 근데 안나푸르나 갔을 때 한 독자를 만났어요. 저한테 라면도 선물 주고 사인도 받아가고. 또 이번에 책 내놓으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사는 독자들이 있어요. 사실 좀 감동했어요. 쉽지 않거든요. 지갑 열어서 내 돈 써야 되고, 읽으려면 내 시간 써야 되고, 또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내 감정 소모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되는 일이에요. 그런 일을 기어코 해주는 걸 보면서 한 편으로는 드디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무대를 완벽하게 얻었다는 느낌이에요. 이걸 지키기 위해서 아등바등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이야기를 하겠다고 무대에 서면 그걸 듣겠다고 모여드는 독자들이 있다는 거니까. 물론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 비난의 부담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작가의 몫인 것 같아요. 예전에 누가 한 말 중에 세상에 자기 이야기를 내놨을 때 작가는 스스로 작품을 지키는 투사가 돼야 한다고 했어요. 그 말이 맞아요. 전 그렇게 하려고 애써요.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정유정은 육체와 감각, 내 살에 닿는 감촉이 중요한 작가다.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는 것들. 논리를 갖다 댈 것이 아니라 곧바로 살갗으로 와 닿는 생생함, 날것의 느낌.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육체를 통과한 것만 글로 쓰고, 그렇게 작가의 심신을 통과한 글만이 독자에게 던져진다.
“정유정답다는 건 이야기를 끝까지 몰아붙인다는 거겠죠. 두려워하지 않고. 이번에 이 작품을 쓰면서는 정말 타협하고 싶은 생각 많았어요. 나도 좀 예쁘고 행복한 이야기 쓰면 안 될까, 하는. 근데 결국 그건 두려움과 타협해서 나온 이야기거든요. 물론 세상에 잔잔한 이야기도 많겠죠. 근데 그건 제 이야기가 아니니까. 제 이야기는 캐릭터를 극단까지 끌고 가서 엄청난 압력을 주고 격랑을 만드니까요. 벼랑에서 뛰어내리느냐, 돌아서서 나를 살려달라고 외치느냐인 거죠. 극단의 지점에서 제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나오는 것이고요.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그게 제일 저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고백하자면, 나는 정유정의 팬이다. 그것도 열혈 팬.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이제는 좀 고갈되지 않았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4시간 여, 활자에 붙들려 모조리 읽고 난 후에야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압도적이었다. 작가의 팬으로서 숱한 질문이 생겨났다가 돌연 아무 것도 묻고 싶어지지 않기도 했다. 격랑에 휩싸였다. 머리채를 잡혀 실컷 흔들리고 뜯긴 후 버려진 느낌이었다. 그 위에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정유정이 있었다.
정유정은 이번 책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완벽하게 관통하는 한 문장을 심어두었다.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 그녀가 도덕이라는 절대 가치를 마구 뒤흔들어, 우리에게 제멋대로 그림을 그려 보인다. 이 특이종은 어디서 왔는가. 정유정을 아직 모르는 당신들은 어쩌면 행운아일지 모른다. 이 무시무시한 재능의 이야기꾼에게 휘말리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아직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