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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합법적 노름꾼 May 19. 2024

백일해

  작년 어린이집에서 희수를 처음 만났어요. 저는 오랜만에 등원해서 적응기간이 필요했는데 원장님이 너무 많은 활동을 시키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같은 반 희수가 있어서 든든했어요.


  희수는 나무같은 아이였거든요. 엄마에게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생을 밀어내며 자라는 나무였어요. 그런 나무 곁에서 1년은 참 꿈처럼 지나갔어요.


  희수는 올해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어요. 예전처럼 매일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만났어요.


  저는 희수와 모래집을 짓고 놀았어요. 모래를 얹어 토닥토닥 서로 토닥이고. 토닥토닥. 같이 집을 짓다 보면 이따금 손이 스치던 순간들. 봄볕에 프리지어 꽃잎이 내려앉기도 하고. 우리는 쫑알쫑알 말도 참 많았지요.


  모래가 튀어 눈에 들어갈 때도 있었어요. 눈물이 흐르고. 꼭 그런 날에는 눈물같은 봄비가 내렸어요. 올봄에 비가 참 많이 왔지요. 모래집은 비를 맞고 다시 굳고 다시 쌓기를 거듭하며 점점 커져갔어요.


  하지만 희수는 모래집이 커져갈수록. 모르겠어요, 제 추측인데. 무서워했어요. 너무 큰 모래집은 건축법에 어긋나서였을까요. 자신의 집보다 커질까봐였을까요. 무너질지도 모를 모래집에 자꾸만 초대하는 제가 위험해 보여서였을까요. 모르겠어요.

  

  언젠가 무너질 모래집이라며, 희수는 끝장을 냈어요. 더 커지는 게 두려웠다면 조금 덜어내서 작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희수는 엄마에게 혼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보고 싶어요.


  그렇네요.


  그렇네요. 희수가 한숨 뒤에 붙이던 입버릇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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