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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린드 Oct 21. 2024

마법의 주문

'모든 순간엔 언제나 끝이 있어'

 퇴근 후 런닝화 끈을 고쳐 매고 공원으로 나왔다. 오늘의 달리기 완주시간은 50분. 가볍게 달린다. 10분, 20분, 25분… 뛰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숨이 가빠온다. 아무리 천천히 뛰어도 호흡이 거칠어지는 시점은 오기 마련이다. 멈추고 싶지만 멈추고 싶지 않다. 여기서 걷는다면 달리기 실력은 그대로일 테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성격 탓에 조금 더 힘을 낸다. 스마트워치를 슬쩍 확인한다. 남은 시간은 10분. ‘그래, 10분 뒤면 오늘의 달리기는 끝이 날거야.’ 그 뒤엔 숨 가쁜 것도 끝이 난다. 힘들어서 멈추고 싶은 마음도 끝이 난다. ‘끝은 있어, 그러니까 조금 참자’  조금은 위안이 된다. 이를 악물고 조금 더 뛴다. ‘띠리링’ 알람이 울린다. 오늘의 달리기가 끝이 났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린다. 동시에 긴장됐던 마음도 수그러든다. 힘든 순간은 끝이다. 


 ‘모든 순간엔 언제나 끝이 있어’ 달리기에 취미를 붙인 뒤 가장 많이 되뇌는 말이다. 첫 하프 마라톤 도전할 때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곧 끝이 난다고 생각하며 계속 달렸다. 친구와 방 탈출 게임을 하다 너무 좁은 공간에 갇혀 잠시 과호흡이 와도 ‘곧 문이 열릴 거야’라는 생각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순간이 와도 ‘곧 끝이 난다’ 라는 순간의 유한성을 곱씹으면 그 시간을 버틸 에너지가 생긴다. 꽤 괜찮은 마법의 주문이다. 


 문제는 행복한 순간에도 시간의 유한함이 여지없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 것은 어느 주말 오후였다. 방에서 작업을 하다 문득 거실로 눈을 돌렸다. 엄마와 아빠가 과일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반려견 여름이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누워 곤히 잠들었다. 그런 여름이의 머리를 아빠가 쓰다듬었다다. 너무나 평온한 일상. 편안한 미소가 내 얼굴에 조용히 번졌다. ‘그러나 이 또한 언젠간, 끝이 나겠지.’ 습관처럼 되뇌던 말이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금세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때부터였다. 행복한 시간도 언젠간 끝이 날것이라 생각하며 울적해진 것은. 


 주말 오후 여름이와 거실에 벌러덩 누워 낮잠 자는 순간도, 단골 빵집에서 사온 소금빵을 엄마·아빠와 먹으며 TV 보는 평범한 순간도, 애인과 초여름 저녁의 시원한 공기를 느끼며 보내는 행복한 시간마저도 끝이 있다. 으레 인간사 진리로 여겨지고 하는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마련이야’라는 말이 참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일상도 언젠가는, 혹은 예상하지 못하는 빠른 시간 안에 소멸한다. 이 생각이 한번 떠오르면 겉잡을 수 없이 머릿속에 가득 번진다. 시공간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순간의 유한함’은 고통을 끝내거나 행복을 끝내거나 너무나 뚜렷하게 이분법적이다. 너무 필요하지만, 너무 싫다. 


 힘든 달리기를 끝내니 평온한 시간이 시작됐다. 스마트워치의 기록을 본다. 생각보다 페이스가 잘 나오지 않았다. 실망감이 밀려온다. 시원한 냉수로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을 꿀꺽 삼켜버렸다. 기록에 대한 불만은 어느새 끝나고 상쾌한 기분이 몸을 감싼다. 어쩌면 ‘시간의 끝’도 이런 걸까. 고통의 시간이 끝이 나 행복한 시간이 오고, 행복한 시간이 끝이 나 슬픔이 시작되면, 그것은 언젠가 올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을 의미한다. ‘끝’은 그자체로 좋거나 나쁘거나가 아닐거다. 어쩌면 끝없는 행복을 가져다 주기 위함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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