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냄새를 안 맡아봐?”
남편은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편이다. 잠을 잘 때 코를 많이 고는 것을 보니, 코 구조가 특이한 것 같다. 남편의 관심사는 음식인데, 음식의 미묘한 향 없이 어떻게 맛을 즐기는지 궁금하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봄이 오는 차갑고 포근한 냄새", "비 오기 전 무겁고 습한 냄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편은 그게 어떤 냄새인지 묻곤 한다. 그럴 때면 그가 아니라 내 코가 특이한건가 싶기도 하다. 아마 우리 집 강아지 미미와 재롱이가 코를 씰룩거리며 세상의 냄새를 수집할 때, 나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 냄새를 안 맡아봐?”
미미와 재롱이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후각에 꽤 민감하고 냄새를 잘 구별하는 편이다. 그리고 냄새는 나를 일기보다 더 생생하게 과거 봄의 시간으로 데려가준다. 때로는 어색하고 설레였던 대학 신입생 시절로. 때로는 새 도전을 위해 퇴사를 감행했던 용기와 불안함의 순간으로. 봄 내음은 내게 시작이자 끝이었고, 설레임이자 두려움이기도 했던 봄의 순간들을 재 경험하게 한다. 그 향기들을 온도와 바람과 습도를 섞어 한줌씩 병에 담아둘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강아지들처럼 코를 씰룩거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때의 도전이 결실을 맺어 지금은 해외에서 꿈꾸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종류의 봄내음을 맡게 되었다. 달콤하고 진한 오렌지 꽃 향기와, 스타 자스민의 백합과 바닐라가 섞인 듯한 향기. 이웃집 담장 너머로 맡은 그 향이 참 좋아서 우리집 뒷마당에도 스타 자스민을 일곱 그루나 심었다. 봄에는 창문만 열어도 그 향기가 바람을 타고 실내로 들어온다. 덕분에 남편도 봄에만 피는 이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봄을 인식하고 연상할 향기가 생긴 것이다. 이 향기가 언젠가 나이든 우리를 추억의 순간들로 데려다 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 때는 남편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은, 봄의 냄새가 난다”.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