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을 자유와, 자신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 용기
“엄마는 제가 몸을 팔기에도 충분치 못한 여자라고 했어요.”
내 상담실에 앉아있는 키가 작고 뼈의 굴곡이 드러나도록 야윈 고령의 여성이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그녀의 감정이 상담실에 펼쳐지기 전에 상담가로서 감춰야 하는 분노와 슬픔을 먼저 느꼈다. 아마도 찡그린 이마 주름과 놀라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그런 감정이 조금은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잔혹하고 인간은 귀신보다 무섭다는 흔한 표현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 말을 듣고 60년을 더 살아낸 그녀는 다시 어린 아이가 되어 고개를 숙였다. 앙상하게 작은 어깨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 독약 같은 말이 한 번으로 끝났다면 그녀의 삶의 풍경이 달라졌을까. 정서 학대는 신체 학대로 그리고 방임과 성적 학대로 이어졌다. 누구도 경험하지 말았어야 하는 그런 일들이 그녀의 삶에 씨앗처럼 흩뿌려져 황폐하게 빼곡한 고통의 들판을 만들어냈다. 그 곳에서 그녀는 닿을 수 없는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며 청년이 되고 중년을 지나 노년기에 다다를 때까지 한참을 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삶의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주의 평균 온도는 영하 270도인데 그 곳의 물이 끓는 점은 인간의 체온보다 낮아서 우리는 그 추위에 얼어 죽기 전, 몸 속 수분이 모두 기화되어 죽게된다는 이야기. 그런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녀가 성인이 되어 냉혹한 사회를 겪기도 전, 가정에서 무엇인가 먼저 불타버리고, 오랫 동안 타고 남은 재를 끓어 않고 살아왔을 모습이 말이다. 그녀는 슬픈 기억을 모두 잊을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를 용서하고 자신이 마침내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에게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상담실의 단골 주제이다. 특히 나에게 상처준 이가 부모인 경우 상처를 준 부모를 향한 분노는 자주 자신을 향하게 된다.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이 치졸하게 여겨지고 악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근간에는 ‘가족을 언제나 용서해야 한다.’, ‘용서를 해야 참된 영혼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등의 종교적 또는 사회적 통념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내담자가 어머니를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지, 오랫동안 상처입은 그 곳에서 슬퍼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가 한참을 침묵했던 것 같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회복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 상처입은 자신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을 때 사람들이 마침내 변화를 시작해 내는 것을 본다. 늘 검은 색의 옷을 입으며 눈을 못 마주치던 성폭행 피해 청소년이 밝은 빛의 옷을 입으며 웃는 모습과, 10년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던 사이비 종교 피해 성인이 처음으로 가족과 캠핑을 가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그래서 삶은 영화보다 잔혹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회복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아름답기도 하다.
나는 그녀를 오래 만날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그런 극적인 변화를 이뤄냈을까. 가혹했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사람이니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믿고싶다.
* 이 글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내담자의 정보를 수정하였으며, 사례에 포함된 트라우마 관련 내용은 과장 없이 완화된 형태로 서술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