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겨울 방학 때 대학동기와 함께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동승하여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 몇 번의 수업을 한 후 혼자서 연습하는 날이었다. 학원내부 기능 연습장에서 노란색 승용차를 운전하며 신호를 기다리는데 반대쪽 하얀색 트럭 한 대가 마주 보고 섰다. 신호를 보다 반대쪽 트럭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후광이 비치는 것이다. 앗! 이런 게 첫눈에반한다는 것인가? 조한선을 참 좋아했었는데 조한선 닮은 남자가 반대쪽에서 운전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심장이 두근두근했지만 일단 정신을 차리고 운전 연습에 집중했다. 연습을 마치고 카드를 찍고 나가려는데 내 앞에 아까 본 그 남자가 있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나랑 또래 같은데 몇 살일까? 키도 엄청 크다. 내 앞에서 카드를 찍고 있는 그 남자 뒤에서 발뒤꿈치를 최대한 들고 어깨너머 카드 찍는 기계 화면을 봤다. 86년생 권** 내 머릿속에 일단 입력 완료! 아 ,, 19살?!나보다 어리다는 것을 알고 살짝 마음을 내려놓았다. 학원에서 몇 번을 마주쳤는데 나만 반했지 너는 나한테 관심도 없었지. 나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수업이 며칠 안 남았을 때 말을 걸어 볼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 20대의 나는 조금 저돌적이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마음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보다 2살 어리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같이 학원 다닌 친구에게 상담을 했다. 미련 남지 않도록 말도 걸어보고 연락처도 물어보라고 용기를 주어서 만나면 꼭 연락처를 물어보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 뒤로 시간이 맞지 않았는지 우리는 운전 학원에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는 싸이월드에 1986년생 권 **을 찾았다!! 싸이월드 사진에서 본 그는 역시 너무 잘생겼다. 그리고 나는 파도타기로 우연히 찾았는데 혹시 ** 운전학원 다니신분 아니냐고 쪽지를 보냈다.(아, 지금 생각하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고 헛웃음만 나온다.) 그렇게 나는 남편과 일촌이 되었고 남편은 운전학원에서의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싸이월드에서 본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한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우리의 썸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까지 여자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가 먼저 관심을 보이니 설렜다 했다. 눈도 크고 피부 하얗고 순수하게 생긴(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둘 다 콩깍지가 씌었다) 누나가 너무 예뻐 보였다고 한다. 처음만날 때 스키니 진과 부츠에 재킷 입은 모습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고 너무 힙하고 멋진 대학생 누나로 보였다고...그렇게 나는 남편의 첫사랑이 되었다.
20대의 나는 청개구리 마음이 강했었다. 나쁜 남자를 좋아했었고 내가 먼저 좋다고 표현한 후 상대가 나에게 푹 빠지거나 나를 좋아하게 되면 마음이 떠나버리는 너무 나쁘고 못된 여자였다. 남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썸을 타면서 여러 번 데이트를 했는데 어린 나이라 그런지 수능을 막 친 고등학생과 이미 대학생이었던 나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너무 애어른 같았던 남편이 조금은 깝깝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고 그로 인해 너무 멋지고 건설적인 삶을 사는 나의 남편이 되었지만..)남편은 나에게 고백을 했고 나는 일단은 고백을 받기는 했는데 마음이 자꾸 아니라고 말해서 남편을 결국 밀어내고 좋은 친구로 남기로 했다. 그때 남편이 의남매로 오래오래 누나랑 계속 잘 지내고 싶다며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아직도 종종 남편을 놀린다. 우리는 의남매라고~!!)
남편은 대학입학을 했고 나도 개강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이트 데이에 시내에서 잠시 만났고 사탕과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다. 카페에서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댄디한 세미 정장에 백팩을 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껏 꾸민 신입생의 풋풋한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참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그냥 동생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서서히 멀어졌고 서로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일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