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고스 Mar 17. 2023

팩트풀니스(Factfulness)가 내미는 손길

세계관의 함정

당신은 세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만일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직감적인 느낌’인가 ‘구체적인 생각’인가? 만약 어렴풋한 느낌이라면 그 시점은 현재인가, 아니면 몇 년 전인가? 수년 전 혹 수십 년 전인가? 그때로부터 현재까지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달라져 왔는가? 더 나아졌는가 더 악화하였는가? 잘 모르는가?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거슬러 온 직감적인 느낌은 어디서부터 얻었는가?


‘사실 충실성’이라는 뜻을 지닌 제목의 이 책은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을 벗어나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가지도록 그 길을 안내해준다. 많은 사람의 세계에 대한 오해 정도가 심각할 뿐 아니라 체계적이기까지 하다고 책에선 말한다. 이에 맞서 세상을 보는 눈을 왜곡하고 함정에 빠뜨리기도 하는 본능 요소를 10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1. 간극 본능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을 가리킨다. 즉 세상이 둘로 나뉜다는 오해다. 사람들은 종종 이분법적인 사고를 선호하여 좋은 것과 나쁜 것, 영웅과 악인, 우리와 저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등 세계를 둘로 나누곤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분법으로 나눠온 것들은 분할이 아닌 완만한 다양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보와 통계의 이면을 분석하여 불필요한 간극을 줄여야 한다. 10가지 본능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전제로 삼는 것은, 세계를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나누는 간극 본능적 이분법에서 벗어난 후 전반적인 소득과 생활 수준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하는 것이다.


2. 부정 본능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성, 주목을 끄는 소재를 향한 언론의 선별적 보도, 과거보다 정보에 대한 접근 통로가 다양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진 점 등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부정 본능은 우리를 상당히 부정적인 관점으로 이끈다. 주변 상황이 악화하는 것 같으며,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쁜 뉴스에는 대부분 해로움과 동시에 나아지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 공식을 대입하여 뉴스를 판가름하자. 또한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기 위해 긍정적 변화 소식을 직접 찾아보자. 디스토피아로 휩쓸려가는 것을 막자. 좋은 소식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 우리에게 도달할 확률이 훨씬 높기에 각자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3. 직선 본능

인구 증가와 같은 몇몇 분야에서 그 수치가 직선의 형태로 마냥 증가하기만 할 것으로 단순화하는 생각은 왜곡을 불러오기 쉽다. 변화 추이에 있어 ‘꾸준함’이라는 규칙은 생각만큼 잘 적용되지 않다. 그래프의 선은 마냥 일관된 직선의 형태를 띠며 나아가지 않는다. 모양에 따라 S자 곡선, 미끄럼틀 곡선, 낙타 혹 곡선, 2배 증가 곡선 등 다양한 굴곡을 그리며 변화한다. 악화하면서도 나아질 수 있고, 나아지면서도 악화할 수 있다. 직선 본능 억제를 위해 세상엔 다양한 곡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4. 공포 본능

언론도 우리도 모두 공포스런 이미지에 유독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위험한 세계라는 이미지는 효과적으로 방송을 타지만, 지금 실제 세계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덜 폭력적이고 더 안전하다. 늘 잔잔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결핵보다 극적인 이벤트성 지진이 언론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죽어가는 해저나 시급한 어류 남획 문제처럼 더 해롭고 덜 극적인 문제보다 덜 해롭지만 공포를 자아내는 화학물질 유출이 언론의 러브콜을 독차지한다. 공포는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지만 그만큼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주목하게 하고, 실제로 매우 위험한 것은 외면하도록 한다.


5. 크기 본능

크기 본능은 부정 본능과 더불어 세상의 발전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하게 한다. 미생물이 개미보다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작은 것은 누구나 알지만,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개미 그 이상의 존재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크기 본능은 우리의 제한된 관심과 자원을 개별 사례나 눈에 보이는 피해자, 또는 우리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것에 쏟게 한다. 전세계적인 복지 수준이 나아지고 있음에도, 눈 앞에 굶어 죽는 아이 한 명을 보는 순간 나의 뇌에게 그 사실은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50만이라는 수는 500만에 비해서 현저히 작지만 5천에 비하면 현저히 크다. 하지만 50만에 비교할 수가 없으면 사람의 주관과 직감에 의해 50만은 얼마든지 큰 수가 되기도 작은 수가 되기도 한다. 크기의 함정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수와 비교할 다른 수를 두거나 혹 수를 총합으로 나눠 현실적인 체감이 필요하다. 총량보다는 비율이 더 의미가 크다.


6. 일반화 본능

사람은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가진다. 대책 없는 편견 때문이거나 깨우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고가 제 기능을 하려면 범주화와 일반화는 필수이다. 그 중 많은 사람이 인정한 문제 있는 일반화를 고정관념이라 한다. 역효과를 내는 일반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내 범주에 의문을 품는 방법이 있다. 내부의 차이점과 집단 간 유사점 찾아보기, 다수와 예외 사례에 주의하기, 나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하나의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 일반화할 때 주의하기 등의 지침이 그렇다.


7. 운명 본능

운명 본능은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하며 피할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다는 생각에 갇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어떤 대상을 불변의 것으로 보는 생각은 오늘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모든 혁신적인 변화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더딘 변화를 불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기초 지식도 빠르게 변화하곤 한다. 수십 년 전 통계를 찾아보면서 내가 고정관념 삼고 있던 것들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체감해보라.


8. 단일 관점 본능

우리는 단순한 생각에 크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출발점은 주의를 사로잡는 단순한 생각이지만, 그것이 다른 많은 것을 훌륭하게 설명하며 해결책이 된다는 생각까지 매끄럽게 쭉 이어 나가기 쉽다. 세계는 단순해지고, 고로 오해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 패턴의 허점을 찾아보라. 하나의 관점으로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전문적인 분야일지라도 내 분야를 넘어서까지 전문성을 주장하지 말자. 모르는 것에는 겸손하고 수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단순화를 주의하라.


9. 비난 본능

비난 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가 그걸 원해서 그리 되었다고 믿고 싶고, 개인에게 그런 힘과 행위 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려는 이 본능은 진실을 찾아내어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방해한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극히 단순한 해법에 갇히면 정작 주목해야 할 곳에 주목하지 못한다. 책임을 돌릴 희생양을 찾았다는 생각에 홀가분해하지말라.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악당보다는 원인을 찾고, 영웅보다는 시스템을 찾아보자.


10. 다급함 본능

다급함 본능은 위험이 임박했다고 느낄 때 즉각 행동하고 싶게 만든다. 아주 먼 과거에는 이 본능이 인간에게 이롭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즉각적 위험이 거의 사라지고 복잡하고 추상적인 문제를 마주하는 요즘, 다급함 본능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분석적 사고와 충분한 고민을 가로막고 극적인 행동을 부추긴다. 미래를 이야기할 때는 늘 불확실성의 정도를 밝혀야 한다. 예상되는 위험만큼이나 예상되는 안전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최선과 최악의 가능성이 있을 때 예상치는 중간으로 잡고, 여러 가능성의 범위를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 책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우리의 머릿속 세계관에 영향을 끼치는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다.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이 우리에게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도 극적인 세계관의 피해자일 뿐이다. 모두가 정기적으로 세계관을 점검하고 업데이트해야 하며, 사실에 근거해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할 필요성을 줄곧 강조한다. 특히 양질의 뉴스 매체조차 통계 기관처럼 세계를 중립적으로, 극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언론에 그 수준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그보다는 소비자인 우리가 ‘뉴스가 세계를 이해하는 만능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웠지만 완벽한 책은 아니었다. 전 세계 국가를 네 단계로 나눈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각 단계를 나누는 기준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으며 단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용한 통계 자료들에 대하여도 충분한 검증 과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팩트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디테일 면에서는 아쉬웠지만, 머리말(서론)에 저자가 강조하는 명확한 관점과 목적이 있기에 거기에 발맞춰 따라가는 것은 유익했다.


 그동안 주로 세계의 부조리한 부분을 접하고 살았다면 ‘팩트풀니스’에서는 꽤나 희망적인 뉴스를 수혈받았다. 마치 한쪽으로 내려가 있던 시소의 반대편을 눌러 균형을 맞춰 준 느낌이었다. 또한 몰입은 하되 치우치지는 말자는 가치관을 저자를 통해 얻게 되었다. 무언가에 몰입을 하면 으레 그 관점으로 치우치기 마련이다. 이 때 자신만의 생각도구를 활용하여 사실에 근거한 관점을 유지하는 기술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세계를 극적이지 않고 건조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팩트풀니스>는 읽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물론 머리말을 꼭 읽어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