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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옥 Mar 25. 2024

하우스키퍼의 학벌과 등급

기본 교육이 중요한 이유

하우스키퍼의 등급

호텔에서 청소하는 하우스키퍼 사이에도 등급이 있다. 누가 더 빨리 객실준비를 마치느냐를 기준으로 등급이 나뉜다. 객실준비는 기준에 맞게 청소를 함과 빠진 비품이 없이 정확한 위치에 배치해 두는 일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물론 배정받은 객실을 더 빨리 마친다고 해서 시급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여유를 부려가며 청소를 하는 이들도 있다. 뼛속까지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이럴 때는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다.


드러나는 학벌

하우스키퍼를 뽑는 기준에 학벌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학벌은 자연스레 드러난다. 흔히 생각하는 명문대를 졸업했느냐의 학벌이 아니다.


- 초등학교를 다녔는지 못 다녔는지,

-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자퇴를 했는지, 퇴학을 당했는지,

- 교육을 받는 곳을 다녀본 적이 있는지,

- 홈스쿨링이라도 했다면 공부를 해본 적이 있는지...


지난 3년간 하우스키퍼를 트레이닝 하면서 배움과 학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했다. 내가 말하는 "배움과 학습"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입시준비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트레이닝을 하다 보면 의외로 학교라는 곳을 못 가보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젊은 사람이 많다. 초등학교를 못 간 것은 문화적으로 안 가도 되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한 사연이고, 고등학교 졸업을 못한 이유는 성적이 안되거나 집안형편이 어렵거나 임신을 해서 중퇴를 한 사연들이 있다.


삼각형 수건 접기

새로운 하우스키퍼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었다.


레이나: "꼭짓점을 맞춰야 해."

레이나: "이렇게 변을 따라 접으면 돼."


하우스키퍼는 경력과 무관하게 5일간 트레이닝을 받고 객실을 배정받는다. 엘레나는 트레이닝을 받는 5일 내내 삼각형 수건 접기를 가장 어려워했다. 버리는 수건에 선과 점선을 그려가며 연습을 시켜보기도 했다.


엘레나: "No puedo."


스페인어로 "나 못해."라는 의미이다. 여러 번을 설명하고 연습을 시켰지만 결국 삼각 접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레이나:  "내일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해. 같이 접어줄게."


나는 객실 수만큼 삼각 접기 수건을 따로 접어주었고 엘레나는 그 수건을 카트에 실으며 여러 차례 스페인어로 반복하여 말했다. "Muchas gracias." (정말 고마워).


언어가 아니가 기본이 문제

영어로 "element"는 "기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초등학교 (elementary school)에서 배우는 "기본 교육"은 우리 인생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엘레나는 멕시코에서 온 70세가 넘은 하우스키퍼이다. 영어는 "하이" "땡큐" "쏘리"밖에 못한다. 내가 스페인어를 못해도 번역기를 사용해 가며 트레이닝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언어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우스키핑이 어려웠던 이유는 기본교육을 받지 못함에서 오는 이해력의 부족이다. 엘레나는 학교를 다녀본 적도,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엘레나의 무지함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엘레나의 성장과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움의 가속도

청소할 때 필요한 스킬은 눈썰미가 좋으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긴 하다. 아무리 쉽게 배울 수 있는 것도 기본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배움의 속도에 차이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종이접기를 하며 놀아본 한국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미국 아이들보다 도형이나 수감각이 유독 뛰어나다. 구구단을 외운 한국 아이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확실히 계산이 빠를 수밖에 없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당연히 수학진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배움에도 가속도라는 게 붙는다.


공통점

엘레나는 사각형을 사선으로 접어서 삼각형으로 만든 후 삼각 접기를 반복적으로 둘둘 접어내려 가는 동작을 끝내 익히지 못했다. 단순히 "직사각형"의 샤워타월을 세로 "3등분"으로 접어서 맨 위칸을 "직각 삼각형"으로 접은 후 "꼭짓점"과 "꼭짓점"을 맞추는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게 학벌과 무슨 상관이겠나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트레이닝을 하다 보면 교육을 받지 못한 하우스키퍼들의 공통점들이 추려진다. 그리고 기본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수건걸이에 수건의 수평을 맞추어 걸어놓는 것

- 비누와 로션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 베개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침대 가운데 비치하는 것

- 옷걸이를 같은 종류끼리 (일반/바지 집게 옷걸이) 왼쪽과 오른쪽 행어에 고르게 걸어놓는 것

- 휴지, 메이크업 리무버, 메모지, 펜 등 알파벳이 바르게 보이도록 비치해 놓는 것  

- 와인 쿨러 양쪽 컵의 개수가 같게 비치하는 것

- 수건은 패턴이 같은 방향으로 접는 것

- 침대 시트를 서랍장 끝 선에 맞추어 접는 것


매우 사소한 것들이지만 3년간 트레이닝을 해오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선을 못 맞추거나, 개수를 혼동하거나, 좌우대칭을 못 맞추는 것, 등은 반복적으로 트레이닝시켜도 잘 익혀지지 않는 부분들이다.


오해

처음 트레이닝을 시작했을 때는 아무리 반복해도 고쳐지지 않는 부분들이 매우 짜증스러웠다. 겉으로는 매우 친절하게 다시 설명하고 천천히 보여주기도 했지만 5일간의 트레이닝을 거치면서 까지도 "줄도 잘 못 맞추고" "1/3로 접지도 못 하고" "좌우 대칭도 못 맞추는" 행동이 게으르거나 배울 자세가 전혀 없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 오해했었다.


배려와 응원

하우스키퍼가 청소를 마치면 슈퍼바이저가 각 방을 점검한다. 슈퍼바이저는 닦아야 할 부분을 닦지 않았거나 비치해야 할 품목을 깜박할 경우 하우스키퍼에게 경고를 주긴 하지만 이렇게 줄을 맞추지 못하고 영어를 위아래 거꾸로 읽히도록 비치해 두는 것쯤은 눈감아준다. 사소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직접 수정해 가며 마무리 짓고 나서야 객실이 준비가 되었다고 프런트에 보고한다. 하우스키퍼의 약한 부분을 무척이나 잘 이해한다. 특히 언어가 안 통하는 미국땅까지 와서 기술도 자산도 없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가려는 이들을 배려해 주고 응원한다.


등급

하우스키퍼 사이에도 등급이란 게 있다. 빠르고 완벽하게 객실준비를 마치는 사람, 청소는 잘 하지만 뭔가 하나씩 빼먹는 사람, 열심히 하지만 느린 사람,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사람.


슈퍼바이저는 그 등급을 바탕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계속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통상 30분이면 끝내는 객실을 40분이 넘어가도록 청소하다 지친 하우스키퍼가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하우스키퍼: "쉴 새 없이 움직였는데 아직도 못 끝냈어요. 나도 더 빨리 하고 싶은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

슈퍼바이저: "괜찮아. 일 시작한 지 첫 달이잖아. 하다 보면 차츰 나아질 거야."


배움

우리 모두 너무 빨리 움직여가며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기대감에 숨이 막힐 때 가 있다. 주변사람들과 비교해 가며 끊임없이 등급을 나눠가며 말이다. 그 등급으로 인해 상처받고 실망하고 차별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에게, 아이들에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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