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엘츠 시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엘츠 시험을 접수해 두고 이제 다음 학기가 시작이 될 텐데 얼른 큰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남편을 쪼기 시작했어. 그 당시 일하던 곳에서 일한 지 이년이 채 안 된 남편은 아무도 안 뽑아주어 비자가 끝나 한국에 갈 뻔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뽑아준 매니저에게 의리를 지키고 싶다며 그래도 이년 꽉 채우고 가겠다고 하는 거야.
나는 이미 영어 공부하느라 시간을 몇 년 동안 너무 허비한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 한가득이었지. 내일이라도 빨리 학교를 편입해서 빨리 나도 다시 일을 하고 싶었어. 그래야 좀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지만 내 점수가 그리 쉽게 나올 거라고 생각 안 했던 것 같아. 남편도 아이엘츠를 전 과목 칠 점을 받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랬겠지. 난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었으니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 그런데 시험을 보고 대충 학교 들어갈 점수가 나오고 가능성이 보이면서 남편이 매니저에게 드디어 말을 했어. 두 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가겠다고. 운 좋게 얼마 안 되어 그 도시에 사람이 필요했고 우린 드디어 이사를 가게 되지.
부푼 꿈을 안고 우린 이 도시에 이사 오면서 내 학교 입학 등록도 마치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전에 다닌 대학 실라부스도 한국 대학에 요청하고 등등 할거 서류 다 내고 기다렸지. 내 생각에 빠르면 그 해에 편입해서 일 년만 다니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 입학처에서 보통 그렇게들 한다고 말해줬었거든. 그런데 진짜 서류를 들고 가서 물어보니 일 년짜리 편입은 없어졌고 이년 다 다니게 한다는 거야. 너무너무 화가 나더라고 근데 뭐 방법이 없잖아. 꾹 참았어. 그리고 또 기다렸지. 학교에서 인터뷰한다고 날이 잡혔데. 그래서 이제 뭔가 진행이 되긴 되는구나 하면서 엄청 긴장하고 갔다. 학교 널싱파트 디렉터라며 앉아 있는데 엄청 꼬장꼬장해 보이는 자세 엄청 꽂꽂한 하얀 머리 커트 할머니였어. 포스가 어마어마하더라. 내가 한국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별난 사람 다 봤지만 이 할머니는 같이 일하면 옆에 사람이 재로 변할 것 같은 그런 강력한 사람이었어. 아무튼 그 할머니랑 인터뷰를 하는데 할머니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 우리는 학생을 받을 때 로컬을 우선시한다고 하는 거야. 내가 속으로 나도 영주권자인데? 했지. 바로 할머니가 네가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걸 안다. 그렇지만 우린 그래도 로컬(여기서 고등과정 마친 주민)이 등록하면 너의 자리를 그들에게 줄 수밖에 없다고.
내가 물었어. 난 한국서 간호사였어서 편입하는거로 알고 있었는데 몇 년을 해야 하는 거야? 하고. 그랬더니 날 보면서 옆에 진짜 엄청 높이 쌓여있는 에이포용지 서류들을 가리키며 그러더라고. 이거 보여? 이게 다 너처럼 인터내셔널 널스들이 여기 편입한다고 보낸 서류들이야. 네가 그걸 원한다면 니 서류를 이 맨 밑에 넣어줄 수 있어. 그럼 네가 언제 공부를 시작하게 될지는 장담 못해. 딱 그러더라고. 핫 하하 헛웃음이 나오더라. 이건 협박인 건지. 막 속이 부글부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화가 치미는데 진짜 포커페이스 안 그런 척 유지한다고 너무 힘들었어. 그러더니 또 한술 더 떠서 이번 겨울에 시작하는 코스는 바첼라 오브 널싱이 티오가 없는데 다음 해에도 사람이 많으면 바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우리가 파운데이션 코스로 레벨 4 코스 간호대 가기 전에 기본적인 거를 배우게 해주는 코스가 있는데 그거를 먼저 이번에 시작하고 거기서 모든 과목 비학점 이상을 받으면 무조건 바첼러오브널싱은 들어가게 해 줄게. 하고 선심 쓰듯이 말하는 거야.
난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일 년 공부하면 된다고 하더니 그 사이 그 코스 싹 없애고 인터내셔널 비싼 학비 내는 애들만 싹 받고 그나마 이년으로 코스를 늘려놓고. 이제는 나보고 삼 년 처음부터 다시 하는 코스에 육 개월짜리 파운데이션 코스까지 하라고… 순식간에 일 년 생각했던 공부를 이년 반을 추가로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막 미치겠더라고. 그것만 바라보고 영어공부를 그렇게 했는데 겨우 겨우 남편과 어렵게 이사도 왔는데 한고비 지나니 이렇게 큰 시련이 또 올 줄 누가 알았겠어.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니까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아.
아무튼 그 자리에서 내가 뭐라 말해야겠어. 아무튼 알았다고 난 뭐 옵션이 없는데 뭐라도 다 하겠다고 했지.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한테 화풀이 엉엉 울고 한참 거의 한 달을 폐인처럼 지냈어. 그리고 입학 허가서가 집으로 도착했고 그래도 그나마 학교를 다니게 되어서 뭐라도 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생각했어.
학교를 당장 가서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니까 겁이 너무 나는 거야. 시험 준비하는 거랑 또 틀린 문제잖아. 그래서 동네 무료로 영어 공부 가르쳐 주는데서 하는 좀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와있는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어. 이민자들 취업 도와준다고 만든 프로그램이었지. 워크토크라는 몇 주동안 심화코스로 해주는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진짜 내 얘기도 좀 하게 되고 교정도 받아보고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게 되고 참 괜찮았던 거 같아. 이걸 보는 뉴질랜드 친구들이 있다면 한번 추천해주고 싶어.
그러면서 그때부터는 회화에 집중해서 공부하려고 했어. 항상 아카데믹 시험 준비만 해서 일상 대화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거든. 특히 아무말 대 잔치인 스몰토크에 너무 취약했거든. 그걸 잘 못하니까 누굴 만나도 첫인상이 아. 얘 영어 못하는구나 하고 말을 안 시켜. 그게 문제더라고. 애써서 좀 멘트를 던지려 하면 분위기 싸해지고. 와… 너무 답답한 거야. 나 한국말로는 아주 재밌게 말 막 던질 수 있는데 말이지….. 근데 이 문제는 거의 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해결이 안 났어. 한참 일하면서 좀 이 능력이 향상이 되더라. 억지로 공부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드디어 파운데이션 코스인 레벨 4 코스가 시작되었지. 매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쭈욱 풀타임으로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하는 코스였어. 간단한 숙제이지만 매주 뭘 완성해서 내야 하는 타스크들도 많았고 기본적인 해부생리학도 배우고 에세이 쓰는 법도 배우고 기본 워드 엑셀 같은 컴퓨터도 배우고 수학시험도 보고 ㅎㅎ 엄청 빡빡한 스케줄로 사람들을 굴리더라고. 처음엔 같이 들어간 아이들이 팔십 명이었는데 나중에 그 코스 수료한 사람은 한 이십 명 되려나. 그 와중에 학점 비 이상 되어야 간호대 학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수료한 애들 중에도 못 올라간 애가 꽤 있어서 한 열명정도 나 포함 같이 올라갔나 봐.
처음엔 왜 내가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것까지 해야 하나 열받았는데 이게 나는 영어로는 이런 기본 공부들을 안 해봤잖아. 그래서 그런지 영어로 다시 배우니까 엄청 새롭고 재밌는 거야. ㅎㅎ 기본 수학 용어들 의학용어 중에도 모르는 게 많았고 에세이를 이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쓰기를 원하는지 알려주니까 진짜 간호대 가기 전 기본기를 다지기에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더라고. 그 도도하던 인터뷰 보던 널싱디렉터가 그래도 싫었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사실 바로 투입돼서 에세이 쓰고 과락되고 그럼 어쩌나 걱정했는데 준비 과정을 거치니 그 걱정이 좀 줄더라고. 그리고 알게 된 건 이 뉴질랜드 간호대는 한번 떨어지면 기회를 많이 안주더라고. 몇 번 주는 기회에 만회를 못하면 평생 그 코스는 못하는 거지. 너무 살 떨리고 무서웠어. ㅠㅠ
(6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