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어디
내가 어릴 때 성당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하늘나라의 모습은 이러했다.
천국에는 한상 가득 온갖 산해진미들이 차려져 있다. 그런데 자신의 키만큼 기다란 젓가락으로 사람들은 웃으며 음식을 먹는다. 당연히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은 자신의 입에 넣을 수 없고 남의 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남을 먹이고 서로를 먹여주며 내 것을 챙기지 않아야 내가 먹을 수 있는 식탁. 자신이 자신의 배를 채우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하게 마음껏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다.
한쪽 켠에 지옥이 있다. 사람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쉬고 있다. 일견, 그들은 지옥의 사람들 같지 않고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은 똥통이나 불구덩이에서 100년을 살다가 지금 막 나와 잠시 쉬는 10분의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짧은 휴식동안 그들은 절대 지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100년 만의 휴식이므로. 다시 100년 후에나 맛볼 이 순간에는 최대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천국의 식탁보다 곧 다시 100년 간의 고통에 살아야 할 지옥의 사람들을 한참 동안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천국과 지옥은 꼭 하늘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의 모습이었다. 돌아보면, 마음이 똥통이고 불지옥이었던 때 화를 내고 마음을 끓였던 그곳에는 내가 주인공이었다. 원하는 것을 먼저 갖고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가져야 편안해질 것이었다. 천국의 행복은 내가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긴 젓가락으로 남에게 먹여 주며 느끼는 기쁨이다. 나의 몸과 마음만 편하면 행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곧 다가올 지옥의 시간이 기다리는 10분간의 휴식 시간이다. 삶이 지옥이라는 전제라면 지금 이 순간 가장 편안해야 할 것이다. 삶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남을 먹이는 일임에도 알면서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만 하다. 차라리 그냥 짧은 젓가락으로 내가 먼저 빨리 먹으면 남도 더 많이 먹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좋을 텐데 천국의 젓가락은 왜 길어야 할까. 짧은 젓가락으로 남도 먹일 것 같지만 아무리 그렇게 약속하고 다짐해도 결국에는 음식은 내 입으로만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천국의 식탁주인은 알고 있었을까. 긴 젓가락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의 타고난 이기심을 경계하는 작동원리였다. 젓가락의 길이만큼 천국은 멀고 화장실만큼 지옥은 가깝고.
진수성찬을 남에게 먹여야 하는 천국의 긴 젓가락이 천국의 열쇠였을까. 천국의 열쇠는 남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내 입이 아니라 남의 입을 먼저 생각하는 천국은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남에게 먹여 주어야만 나도 먹을 수 있는 그것이 천국의 시간인 것을.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10분간의 지옥의 휴식 시간일까. 아니면 다른 이를 먼저 먹이는 천국의 식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