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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Mar 29. 2024

예수의 죽음



2년 전 예수의 시신을 감싼 것으로 유명한 ‘토리노의 수의’에 대한 영국 법의학자와 의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대한 논문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다. (https://www.mk.co.kr/news/world/10291687)     

토리노의 수의는 2000여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시신을 감싼 수의로 전해져 이탈리아 토리노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동안 진위여부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예수의 수의를 통해 사망 원인을 유추해 본 결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가 탈구되었고 그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바람에 흉부와 머리, 목, 어깨 등을 잇는 쇄골하동맥이 찢어지면서 내부출혈로 예수의 흉곽과 폐 사이 공간에 1.7L 이상의 피가 고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3시간여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쉴 때마다 쇄골하동맥이 갈비뼈 표면을 찌르며 마찰해 결국 파열됐을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이를 증명하듯 예수가 죽은 후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로마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가 고통받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고 예수도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죽었다. 그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끝이 아니었다. 뼈가 으깨지고 살이 찢어지는 육체적 고통보다 죽을 이유가 없이 죽어야 하는 억울함과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악함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이 더 아프고 비참했을 것이다. 모든 부당함 속에서 예수는 살고자 하지 않았다. 변명하거나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용서를 청하였다. 예수를 통해 희생과 죽음만이 사랑임을 보여주기 위해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자신들의 눈으로 죽어가는 예수를 보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는 죽어갔다.   

  



잘 살기를 원한다. 100년도 안 되는 시간이다. 살아있는 동안 돈을 많이 벌고 육체적으로 안락하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처럼 억울하게 고통 속에서 살면서 죽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억울해도 화내지 않고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그들은 예수처럼 말없이 죽어가지만 예수의 죽음의 끝이 부활이듯 그들의 죽음 또한 다른 죽음과 다를 것이다. 사랑은 꼭 다시 부활한다고 예수와 하느님은 알려준다. 예수처럼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임을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리 살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죽어야 사는 것임에도 우리의 욕망은 그렇지 않다.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 영원불멸의 영화를 누린다 한들 지금 여기 눈앞에서 느끼는 만족과 안락함 없이 피눈물로 얼룩진 삶을 산다면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죽음 이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천국을 죽음 이후로 미루었을지도 모른다.      


예수처럼 살라고 한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걷는 것은 어깨가 빠지는 고통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무거운 십자가를 견디는 억울함과 분함을 안고, 옆에서 맨몸으로 편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미움도 참고, 철저히 외롭고 눈물 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참고 견뎌서 얻는 것이 자신을 힘겹게 했던 십자가를 버리고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그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 왜 이토록 삶을 무자비하게 버리라고 하시나, 왜 살라고 하지 않으시나.  

   

예수의 고통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물거품이 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의 존재가 물방울 하나하나로 갈가리 찢기는 것 같다. 목숨보다 소중한 그것을 위해 오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십자가 아래 나는 그의 죽음을 오래오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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