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중'내기'는 우연한 내기에 인생을 걸게 된 은행가와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사형찬반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낫다고 주장한 20대의 젊은 가난한 변호사에게 돈 많은 은행가는 종신형으로 평생 자유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사형집행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하며 사형을 찬성한다. 반면 변호사는 사형은 되돌릴 수 없는 생명을 빼앗는 목적일 뿐이라며 사형을 반대했다. 논쟁 끝에 화가 난 은행가는 감옥에 갇혀 자유가 박탈된 고통을 주장하기 위해 변호사가 독방에서 5년을 견디면 200만 루블을 주겠다고 했지만 이에 지지 않고 고집을 부린 변호사는 15년을 걸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내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곧 은행가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결정된 내기를 후회했지만 이미 내기는 시작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감옥에 갇히게 된 변호사의 15년 감옥생활이 그려진다. 첫해에는 외로움과 권태로 고통스러워했다. 밤낮으로 피아노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 소설책들을 읽었다. 술과 담배는 욕망을 자극해 그를 더 괴롭게 할 것으로 생각해 엄격히 거절했다.
두 번째 해가 되자 피아노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그는 고전서적들만 읽었다.
5년째가 되자 다시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누워있기만 하는 때도 있었다. 책은 더 이상 읽지 않고 아마도 읽을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밤새 글을 쓰고 아침이면 전부 찢어버리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우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렸다.
6년 반이 지났을 때 그는 언어학, 철학, 역사를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은행가는 4년 동안 600여 권이 넘는 책을 감옥에 갇힌 변호사에게 제공해야 했다. 그는 6개 국어를 통달했으며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에 통찰하고 행복해했다.
10여 년이 지나자 변호사는 책상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신약성서만 읽었다. 성경은 모든 책들의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종교사와 신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2년 동안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책을 섭렵하게 된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드디어 내기의 마지막 날, 은행가는 내기에 진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지만 그는 더 이상 15년 전의 부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그 많던 재산은 거의 바닥이 났고 변호사에게 200만 루블을 주고 나면 파산하게 될 가난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불행히도 그는 변호사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몰래 감방으로 침입한다. 그러나 감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는 충격 속에서 변호사가 남긴 편지를 보게 된다.
그의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나는 이제 15년 전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인간들이 축복이라 여기는 자유와 생명, 건강을 경멸한다. 15년 동안 나는 자유가 박탈된 감옥 안에서 책을 통해 무한한 자유를 경험하였다. 인간적인 즐거움과 사랑을 하였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선과 악을 마음껏 향유했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지혜와 축복을 책을 통해 만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며 죽음 앞에서 헛된 것인지를 깨달았고 인간의 삶의 방식과 행동들이 얼마나 그릇되고 어리석은지를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 15년 인생의 자유를 포기한 대가였던 200만 루블을 포기하기 위해 15년의 5분 전에 감옥에서 나감으로써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기로 결정한다.
과연 누가 이긴 것일까. 외현적으로 은행가는 내기에서 이겼고 200만 루블을 지킬 수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이 들었다. 변호사는 15년 전에는 그토록 원했던 그 돈과 인간이 행하는 삶의 방식을 경멸하게 되고 스스로 새로운 자유를 선택한다.
그의 감옥생활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온전히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감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 안의 타인과 같은 나자신과 나도 모르는 진정한 나,이 둘만 마주할 때 우리는 은행가가 겪은 15년의 세월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만만하다. 모든 이성은 살아있고 모든 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된다. 알 수 없는 괴로움으로 피아노조차 칠 수 없게 되고 감정은 정지하게 된다. 5년째가 되었을 때 그는 다시 피아노를 치고 술을 마시게 된다. 어쩌면 다시 살고자 하는 그 인간성이 되살아나서 삶에 대한 뜨거운 욕망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기록한 수많은 책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으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15년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부자는 빈털터리가 되고 가난한 이는 돈이 소용없어진 사람이 되었다. 15년 전 은행가에게 내기의 판돈에 지나지 않았던 돈이 15년 후에 그를 살인으로 이끄는 이유가 되고, 변호사에게는 15년이라는 세월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었던 돈이 15년 후에 한낱 종이와 같이 여겨지게 된다. 15년 후 파산한 은행가는 자신의 치기 어린 내기를 후회하며 급기야 변호사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15년 감옥살이를 한 것은 변호사였지만 은행가는 감옥 밖에서 감옥에 사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돈 때문에 괴롭고 그의 관심은 온통 감옥에 갇힌 변호사에게만 신경이 곤두서있었을 것이다.
인간적인 애증과 갈망 욕망과 애욕은 인간의 나약함과, 죽음이라는 확고하고 명징한 결말 앞에서 모든 힘을 잃는다. 자유인이 된 변호사는 그 뒤로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더 이상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평범한 인간들 속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 되었을까. 다시 감옥 같은 생활을 하며 스스로를 가두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돈과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자유의 소중함을 알았을 테니까. 분명한 것은 이제 그에게 물질적인 가난과 인간적인 불행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자유를 구속하고 사람은 세상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 그래서 자유는 언제나 사람과 함께 있지만 공기처럼 잡히지 않는다.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공기를 잊는 것처럼 자유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고도 우리는 살 수 있다. 그것을 자유라고 믿으며 살 수 있다. 은행가의 자유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세상 그 너머의 자유를 알게 된 소설 속 변호사의 자유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