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건 그쪽 입장이지 내가 알 바는 아니잖아요.
내가 그걸 왜 들어줘야 하죠? 그쪽 학교에 당장 전화할게요.
아무튼 나는 더 할 말 없으니 끊겠습니다.
10초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냥 담당자란에 사인을 해주는 것.
주말에 연락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싫을지 예상이 가기에
그 마음을 가득 담아 연락을 했다.
모든 다른 일들은 내가 했고, 정말 휴대폰에 사인을 해서 캡처해 주는 것만 해주시면 된다고.
어디에 사용된 사인인지 바로 다음 날에 인쇄해서 다 보여드리겠다고 사과를 덧붙이며 말했다.
그리고 사실 이건 그 사람의 업무이기도 했다.
평소 나는 부탁하는 입장인 상황을 극도로 꺼리기에
부탁할 일을 안 만드는 타입이다.
그런데 부탁할 일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심각하거나 급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계속 덧붙이는 죄송하다는 말과 정말 급한 상황이라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연락을 드렸다고.
다음엔 이런 일 없을 것이고
이번이 처음이라 저도 담당자 사인이 필요하다는 걸
당일에 알게 되었다고 말하며
오늘이 마감이라 정말 죄송하지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제출할 보고서 내용이 너무 많아 보고서만 일주일째 작성하다가
담당자 사인이 필요하다는 걸 금요일 밤에 안 것이다.
이미 늦은 때였다. 이건 분명히 내 잘못인 걸 알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다 찾고 고민하다가
마감날 겨우 용기 내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던 것이다.
내가 그걸 왜 해줘야 하는데요?
주말에 이렇게 연락하는 거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진짜 어이가 없네. 쉬는 날까지 이렇게 방해를 하고 학교에서 그러라고 시켰나요?
불쾌하니 내일 그쪽 학교에 전화해서 따질게요.
정중하게 부탁을 했을 뿐인데.
물론 기분 나빴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말을 했어야 했을까.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사람 말도 듣지 않고 막 나올 줄은 몰랐다.
이 외에도 참 무례한 말들과
‘이런 말까지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가? 해주지도 않을 거면 그냥 거절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선생은 무지막지하게 불만을 쏟아냈다.
저 외의 말들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 지경이다.
“내가 그걸 왜 해줘야 하는데요?”
선생님이 담당자고 맡은 업무니까요..
“주말에 이렇게 연락하는 거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많이 실례인 거 아니까 이렇게 죄송하다고 연신 말하고 정중히 부탁드리는 거죠.. 정중히 거절을 했어도 받아들였을 겁니다..
“진짜 어이가 없네. 쉬는 날까지 이렇게 방해를 하고 학교에서 그러라고 시켰나요?“
“불쾌하니 내일 그쪽 학교에 따질게요.”
학교가 부모도 아니고 쉬는 날에 그러라고 시키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급하니까 죄송하다고 말하고 부탁드리는 건데 불편했으면 죄송한데 대학이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부모가 선생한테 따지듯 그걸로 전화한다는 것도, 그걸로 제게 협박을 하는 것도 좀 아니지 않나요..
라는 속마음을 삼키고
죄송하다고만 했다.
하지만 그 말조차 저렇게 따지고 언성을 높이며 내 말을 다 가로막고 듣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화를 낸 이유는 뭐였을까.
내가 전화로 꺼낸 첫마디는
선생님, 정말 정말 죄송한데 혹시.. 제가 1시쯤 문자를 보냈는데 혹시 확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꺼낸 후로
그 모든 무례한 말들을 쏟아내고는 나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로 통화가 끝났다.
화낼 포인트가 어딘지 여전히 모르겠다.
분명 전화로 따지는 내용을 보니
문자를 봤음에도 씹은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망하든 말든 네가 망하지 나는 상관없으니 아무튼 신경 안 쓰겠다. 알아서 해라.‘
라는 말투와 말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문자의 내용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주말이라 문자 확인을 안 한 거라면
전화도 받지 말지.
그냥 거절의 문자라도 해주지.
그냥
“주말이라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
정도로만 얘기했어도
이미 거절할 거 그리 상처받진 않았을 텐데.
그렇게 나는 한 달간 더위에서도 죽어라 출근한 멘토링의 보고서를
일주일 간 써냈지만 담당자 사인이 없어 제출하지 못했고
많은 막말과 듣지 않아도 될 훈수와 헛소리를 들으며 대차게 부탁을 거절당했다.
그 말투를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가해 학생의 보호자가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지. 당신이 봤어? 봤냐고.”
라고 할 때의 말투.
자신의 실수로 물건이 고장 났으면서
원래부터 불량이었다고. 왜 이딴 걸 파느냐고 되려 따지는 말투.
그런 말투였다.
논리적으로 말했을 때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화내고 따질 만한
그런 사안이 되지 않으니 되려 상대의 말을 막아버리고는
오히려 당당하게 ”네가 잘못한 거다.“ 라고 만들어 버리는 화법.
높은 언성의 말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에 드렸던 부탁이
산산이 깨지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아예 사라졌다.
물론 그 부탁은 들어주지도 않았지만.
그런데 부탁이라 하기에도
그 사람의 업무 중 하나였다.
어차피 거절할 거면 그리 무례하게 거절해야 했을까.
거의 봉사 개념으로 오는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람이.
조금, 아니 많이 충격이었다.
이토록 각박한 사회에서, 이토록 이기적이고 무례한 어른이라니.
나는 멘토링을 하고 있다.
첫날, 불러놓고 1시간째 오지 않아 멘토링 시간조차도 한참 넘어 멘토링 활동에 지장이 갈 만큼의 행동을 했고
장소 섭외도 미리 해놓지 않아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 다니며
못 구하면 아이의 가정에서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당당히 한 그 사람에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그렇냐며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게 나를 을로 보게 만들었을까.
최소한의 일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대체 어떤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언성을 높이며
겨우 학생인 나에게 그렇게 따져댔을까.
나름 교생 실습까지 끝마치고 아이들에 대한 정이 가득 쌓여있는데
그런 교생 생활 중에서 이번을 포함해 매번 빌런은 선생이었다.
이는 분명 지극히 개인적으로 겪은 일인 게 맞다.
많이 발생하는 선생과 부모의 싸움에서 부모를 빼니
문제인 선생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같은 시선에서 같은 위치를 바라보았을 때
문제가 있는 교육자는 끔찍했다.
겨우 초등학생인 내 멘티가, 내 미래의 아이가
그런 사람에게 잘못된 교육을 받고
앞뒤 다르게 행동하며 아이에게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모를
그런 게 너무 소름 끼쳤다.
나는 이 일로 인해
최근, 선생님에 대한 진로를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선생이라는 직업을 생각하지 않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는 매우 작은 조각 중 하나이고 더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미 피나고 멍들어 있는 곳을 세게 발로 찬 느낌이 든다.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고 그러려던 게 아니었다고
보고서 내용을 확인시켜 드릴 테니
싸인만 캡처해 주면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는 말이
그렇게나 듣기 싫었을까.
문자로 내용을 남겼고
전화로는 욕 빼고 다 한 듯한 상스러운 말들이
그렇게 들려올 정도의 일이었을까.
전화로는 하도 말을 가로막고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를 해서
아무 말도, 아무 변명도 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너무 억울해서, 그 상처가 깊이 박히고 말았다.
우리 엄마는 그저 일하는 알바생만 봐도
내 생각이 난다며
좀 싸가지 없는 알바생을 만나도
오늘 일이 많이 힘들었겠지, 하며
그냥 넘어갔다고 그래서
그 정도 일은 따졌어도 됐다고
내가 그리 말을 할 정도였는데,
오늘 내가 겪은 일은
이 정도면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어른이, 누군가의 엄마가, 어린아이들을 올바르게 통솔하고 가르침을 줘야 할 초등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못 배운 티를 내는 걸까.
자신의 아이가 커서 그런 일을 당하면
참지도 않고 욕할 사람인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똑같이 겪어봤으면 한다.
생각보다 우리가 꽤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난 커서 저런 어른은 안 돼야지.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른 취급을 하고 공경을 하지. 적어도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 할 거 아냐.
어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어른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
왜 저리 못난 어른이 되었을까.
나이가 어리든 그렇지 않든 정말 존경할 만하고 멋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나이가 적든 많든 어쩜 저렇게 행동과 말을 할까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무례하고 무식한 사람은 상식적인 말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논리적인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말이 맞고,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넌 틀렸어.’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무례하며 생각이 없는,
불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불쌍하다.
하지만 나에게 그걸 드러내면 더 이상 불쌍하지도 않은 거다.
이런 사람들은 지위 같은 걸 가져서는 안 된다.
덕분에 세상이 망해가고 있기 때문에.
여태껏 많은 무례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오늘의 무례함에 대해 기록해 보았다.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