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똥파리는 동료나 적 모두 구분하지 않고 욕하고 때리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용역 깡패 상훈을 주인공으로 두고 있는 영화이며 주인공인 상훈은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지만 마음속에 쉽게 떨쳐내지 못할 슬픔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훈이 지나가다 길에서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고 연희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삶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똥파리는 그동안 있던 주인공의 틀에서 벗어난 인물을 설정하여 만들어 낸 영화이기에 평균 이하의 삶을 어떻게 미메시스 하고 있는지 똥파리가 리얼리즘 영화인지 제목에 숨은 의미가 어떤 건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미메시스는 모방, 재현이라고도 하는데 모방은 여러 예술에서 차이점이 있는데 비극을 비극답게 만들어 주는 건 비극의 모방적인 핵심이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현하는 사람들은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고 있는데 영화 똥파리에서 재현된 인간은 깡패 상훈이다. 시학에서는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뛰어난 선인이거나 모자란 악인 둘 중 한 명이라고 하고 있으며 인간의 성격에 따라 미덕과 악덕으로 구별되고 있으며, 모방 대상이 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더 높거나, 낫거나 비슷하다고 하고 있다. 미덕과 악덕 중 미덕이 훌륭한 사람들이며 덕을 잘 갖췄기에 비극의 주인공으로 두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기에는 모방한 대상이 미덕이기에 시학이 비극론으로 가는 것은 뛰어난 사람을 내세워서 불쌍하게 만들고 연민을 느끼게 한 다음 장치를 만드는 것인데 저는 이 내용에 의문점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뛰어난 사람을 내세워서 불쌍하게 만든다고 한 부분에 의문점을 가졌는데 비극과 희극의 차이점을 보면 희극에서는 우리보다 못한 인간을 모방하고 있으며, 비극에서는 더 나은 인간을 모방하려고 한다고 한다.
물론 위에서 우리보다 못한 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모방한다고 하였는데 우리보다 못한 인간을 모방하는 것은 희극, 코미디에서 모방하기에 비극의 주인공과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비극의 주인공은 훌륭한 사람이고 항상 덕을 갖춘 사람이 주인공인데 똥파리에서는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덕을 갖춘 사람도 아니다. 이 부분을 볼 때 시학의 구조로만 가지고 보면 주인공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 없었으며, 비극에서는 주인공의 연민과 공포가 존재해야 하는데 영화 내용 속에서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영화 장면과 함께 살펴보겠다.
작품에서는 상훈을 주인공으로 두고 있으며 상훈이 깡패라는 점과 비극에서 지칭하는 주인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상훈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절망 속에서 그걸 지켜봤던 모습이 상훈이 깡패가 된 이유이며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이 모두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점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작품에서는 가정폭력을 내세우면서 주인공들의 모습을 불쌍히 하고 있었다.
영화를 볼 때 상훈이 비속어와 폭력을 일삼아왔기 때문에 상훈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이었는데 영화에서 상훈에 대한 시선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데 상훈은 겉으로는 깡패였지만 자신의 조카와 누나에게는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애정표현이 부족해서 그렇지 조카를 챙겨주며 아이들이 조카의 아빠가 없다고 할 때나 게임기 없다고 얘기할 때 등 조카에게는 뭐든지 해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누나가 돈이 부족할까 몰래 조카에게 돈을 주고 가고 누나에게 돈을 주는 등 상훈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상훈이 악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비극에서 주인공이 훌륭한 인물이며 덕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 틀에서는 벗어나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상훈이 어떤 인물일까 생각하니 겉으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깡패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족에게는 진심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상훈의 삶을 통하여 상훈의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상훈이 수금하러 간 집에서 아이들이 있을 때는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아이들을 보고 우물쭈물하는 모습 등 평소의 상훈의 모습과는 달랐으며 상훈이 인간미가 없는 깡패는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학생 또한 밖에서는 전혀 집안의 사정을 알리지 않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밖에서 자신의 사정을 들키기 싫어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잘 재현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힘든 사정에 대해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그 모습이 영화 속에 잘 재현되고 있었으며 아버지를 증오했던 상훈이 아버지가 자해했을 때 구해주면서 삶이 점점 더 나아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서 당연히 결말도 행복하게 끝날 줄 알았다. 가장 좋은 비극이 되려면 점잖은 사람이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과 못난 자가 불행하다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연민이 나타나지 않으며 불쾌감만 주고 연민의 감정도 공포의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에 관하여 상훈의 삶이 좀 나아지려고 하다 결국 죽음으로 끝이나는데 부분에서 못난 자가 행복해지는 것을 볼 수 없기에 비극으로 엔딩을 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오히려 더 안타까워하는 연민의 감정을 더 일으키게 되었으며 시학에서 말하는 못난 자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을 가르키는 것 같았다. 상훈이 여학생을 만나고 변화되는 모습으로 상훈의 행복한 끝을 기대해 왔던 저는 엔딩 장면을 보고 많은 연민과 불쌍함을 느꼈으며 이 연민이 시학에서 정해뒀던 비극의 구조와 다르지만, 비극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은 상훈이 왜 불쌍한지와 그 과정을 더 불쌍하게 찍은 영화라고 하는데 상훈의 삶을 보여주면서 충분한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연민을 느끼게 의도한 것 같았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영화 속에서 나타났던 장면 중 의문점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포장마차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상훈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여학생이 상훈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관객들에게 상훈의 존재를 한 번 더 보여주려는 것인 것 같았으며 여학생도 상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비극에서 사건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상호 간의 인과 관계에서 일어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데 여학생이 동생에게서 상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 예상치 못한 마주침에서 효과를 얻는 것 같다. 또한, 여학생의 동생의 사채업자라는 일에 관해 변화된 행동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돈을 받으러 가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으나 후에는 먼저 때리고 상훈이 망설이자 상훈까지 때려 죽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이 사채업자 일을 계속하는 이유와 변화하게 된 것도 궁금하였으며 상훈과 비슷한 인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 그 것은 상훈의 폭행 장면과 비속어사용이기에 상훈이 계속해서 욕설을 사용되고 있어 보기 거북하였다. 욕설을 사용한 이유는 상훈이라는 캐릭터가 깡패이기에 욕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욕설을 적게 사용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으며 욕설을 적게 사용한다면 보기에는 편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욕설과 폭행을 넣으면서 상훈이라는 사람의 행실을 보여주고자 욕설을 넣은 것 같았기에 이 부분에 관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봐야하는 것 이었다. 처음에 이 글을 시작할 때 제목에 관한 의문점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제목이 왜 똥파리인지였으며 영화를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단순히 파리와 관련된 것이 없고 상훈이 살아가는 이야기일 뿐이라서 제목의 뜻을 찾아보니까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는 기분 나쁜 말이며 더러운 존재들,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똥파리는 우리에게 안 왔으면 하는 존재들이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존재들이라며 그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는데 제목의 뜻을 알고 나니 의문점이 해결되었다.
사람들에게 깡패는 피하고 싶은 인물이며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런 깡패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똥파리라는 제목에 공감이 가고 영어 제목인 Breathless 숨 막히는 이란 뜻이며 숨 막히는 삶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똥파리가 상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비극의 주인공과 다른데 상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연민의 감정은 부당하게 불행을 당하는 사람을 볼 때 느끼고, 공포의 감정은 우리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삶과는 다를지라도 가정폭력의 대물림과 가정폭력이 사회적 폭력으로 재생산되는지를 그려내고 있으며 사람들이 깡패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평균 이하의 삶을 영화에서 다루면서 사람들의 연민을 얻고 사람들과 별다를 것 없이 가족에 대한 애정을 찾아볼 수 있었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며 사람들이 상훈이 행복해지는 것을 기대했을 만큼 영화를 통해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려주고 사회의 밑바닥을 잘 보여주며 비참하며 잔혹한 현실을 잘 표현했기에 상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잔혹한 현실을 보여주며 감독은 결말을 통하여 일말의 희망도 없이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짓밟아버렸는데 이 부분 또한 해피엔딩이면 비극적인 모습을 더 강조할 수 없기에 결말에서 더 많은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된 것 같았다.
똥파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훌륭해야 한다는 편견을 벗어나 훌륭한 사람을 다루는 것이 진짜 예술작품이 아니라 처참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하는 사람조차 주인공으로 만들어 꼭 훌륭하지 않아도 비극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똥파리에서 주인공이 불쌍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큰 변화 없이 더 불쌍하게 죽는 과정을 찍으면서 큰 비극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화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런 세계가 있는 것을 보여주고 현실의 사회를 재현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비극이 되려면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모방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주인공의 불쌍한 면들을 재현하고 있으며 영화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가정폭력 피해자로 등장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도 남모를 아픔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가정폭력으로 인해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를 재현하며 모두가 다를 것이 없고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비극을 보여주고 있기에 평균 이하의 삶도 재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평균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깡패인 주인공이 존경받을 인물, 대단한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가정폭력의 아픔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에 이런 삶을 재현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