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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물고기 Apr 30. 2024

너의 이름은 코로로롱로순

교실이야기

과학에서 식물의 한살이를 배우는 활동으로

강낭콩 키우기를 한다.

모둠별로 강낭콩 네 개씩을 나누어주고 심은 후

이름을 팻말에 적어 두기로 했다.

T감성인 나는 사실 그냥 1모둠, 2모둠...으로 적어도

무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짓듯

심혈을 기울여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

이제야 한숨을 돌리며 아이들이 창가에 둔

강낭콩 화분을 살펴보았다.

학교 이름을 딴 OO이부터 코로로롱로순, 토토 등의 이름이 귀엽게 적혀있었다.

그중에 두 화분이 눈에 띄었는데

네 개의 강낭콩에 각각의 이름을 지어준 화분이었다.

마치 네 쌍둥이에게 각자의 이름을 붙여준 것처럼 말이다.

강낭콩 네 형제의 이름은

콩콩이, 콩둥이, 콩둥이, 콩순이였다.

그리고 다른 화분은

강낭콩콩이,강낭콩순이,럭키보이,럭키콩이었다.



한 화분에 이름 하나를 지어주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네 강낭콩의 존재 하나하나를

단 하나의 존재로 소중하게 이름 붙여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참 귀엽고 애틋했다.

김춘수의 <꽃>이 생각나는 봄날의 오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매일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이름을 불러 주고 있는 걸까?

빛깔과 향기보단 지적할 일이 있거나 과제를 내지 않았을 때

필요에 의해서만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때로는 이유가 없어도

그냥 이름 한 번 불러보고 다정한 미소를 건네기도 하는

그런 교사라면 참 좋을 것 같다.

 


강낭콩들아

부디 하루하루 쑥쑥 자라서 이름 지어준 아이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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