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랑기] 보랏빛 가우디 나이트, 바르셀로나 01

감자칩처럼 바삭바삭한 우리의 첫 만남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감자칩 같은 도시다.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기대했던 곳이 바르셀로나였다. 하지만 발을 내딛는 첫 순간, 내가 꿈꿔 온 환상의 도시는 산산조각처럼 부서지고 말았다. 엄청난 기대감에 봉지를 뜯으면 ‘어머! 이게 다야?’ 싶을 정도의 양에 실망하게 되는 감자칩처럼 말이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란 엄청난 보물을 가진 도시다. 비록 적은 양에 놀랐을지라도 바삭바삭 경쾌한 소리를 내며 짭짤한 감자칩을 먹고 있노라면, 한 봉지를 다시 뜯을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매력처럼 말이다. 아쉬워서 더 맛있고 짭짤해서 매력적인 감자칩처럼, 바르셀로나가 내게 그런 곳이다.


런던에서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 탔던 부엘링 항공. 사실 이 사진은 비행기가 아닌 촉촉하게 비 내린 런던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거다. 조금이라도 런던을 더 기억하고 싶어서.


유럽여행을 계획한 순간부터 연착과 결항이 일상인 저가항공의 연착정돈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장착한 터였다. 물론 비행기에 탑승 전에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런 나의 걱정과 달리 옅은 비가 내리던 런던을 지나 바르셀로나와 가까워질수록 하늘의 맑은 색이 더욱 짙어졌고, 연착 없이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솟아올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잠깐이었지만 꿀맛 같은 단잠에서 깨어보니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푸른빛으로 가득한 환상의 공간을 날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은 푸르르고 바다엔 물고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물론 바다 군데군데에서 반짝이던 티끌들이 물고기였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바르셀로나 영해 위를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반짝이던 바르셀로나.


런던이 너무 좋다며, 더 머물고 싶다 외치던 영혼 한 조각을 과거의 런던 어딘가에 묻어두고 온 것이 분명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던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워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바르셀로나에 왔으니 세상의 모든 날씬함을 얻은 것 같은 가벼움이 내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게 분명하다. 평소 게으르고 느린 나로선 기적에 가까운 모습이니까.


하늘도 바다도 경계 없이 푸르렀던 그 날의 바르셀로나. 반듯하게 계획 된 도시가 눈앞에 보이니 너무 신나 소리를 지르려다 정신을 차렸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나의 모든 예상들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유럽과 유럽을 오갈 땐 간단하다고 했던 이미그레이션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악명 높은 영국 입국심사도 무난하게 통과한 나였건만, 바르셀로나에서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 크지 않은 바르셀로나 공항의 이미그레이션 대기 줄은 어느새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사람들로 가득 찼고, 만국 언어 박람회라도 온마냥 여러 나라의 언어들이 뒤섞여 머리 아픈 소음을 만들어냈다.


특히 내가 탄 비행기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온 미국발 비행기 승객들의 항의소리와 우리 뒤를 이어 날아온 중국발 비행기의 목소리부대 함성이 바르셀로나 공항을 압도하고 있었다(대기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며 소리 지르던 아저씨 덕분에 알게 된 정보랄까).


시간이 지날수록 입국심사를 받을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데, 줄은 도통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꼼짝없이 두 시간이 넘도록 엄청난 소음 속에서 내 귀를 혹사시키는 것뿐이었다. 발바닥이 내 몸에서 분리된 같은 고통은 덤이었다.


아찔하리 만큼 힘겨웠던 기다림, 드디어 내 앞에 10명쯤 남아있을 때가 돼서야 상황파악이 가능했다. 몇 백 명(그 이상일지도)의 사람들이 단 세 명의 심사관에게 심의를 거치니 지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것도 한 곳은 EU전용 심사대). 더 놀라운 건 얼굴 한 번 쓱 보고 도장 ‘쾅!’ 찍어주니 15초 만에 입국심사가 끝났단 사실이다. 허무하리만큼 어이없이 빠르게 끝나버린 입국심사. 아니 대체 그런데 왜 그렇게나 시간이 지체된 것인지 세계 7대 미스터리에 들어도 전혀 놀랍지 않을 상황이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이 엄청나게 크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요.’ 차라리 입국심사가 까다로웠다면 덜 억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아.. 금쪽같은 내 시간’

‘빠릿빠릿’한 나라에서 온 나에게 ‘느긋함’이 일상인 곳에 적응하라는 일종의 적응교육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느긋함에 익숙해지기’, 확실히 나에게 필요한 처사긴 했다.


나는 그날의 바르셀로나 공항 상황을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우연히 읽은 칼럼 덕에 짐작할 수 있었다. 시에스타(siesta). 낮잠 시간. 그렇다. 나는 아마도 그들의 낮잠은 방해하러 온 한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것 역시 나만의 뇌피셜이다. 진짜 시에스타로 인해 그런 것인지, 공항에 문제가 있었는진 알 수 없다.


도시 노동자의 유럽 방랑기 바르셀로나 1편
감자칩처럼 바삭바삭한 우리의 첫 만남. 끝.


바르셀로나 여행기 2편의 주인공들. 소매치기보다 무서운 거리의 무법자 비둘기.....구구구구구구구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