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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호 Jun 21. 2023

과거로의 무거운 발걸음, 미래로의 경쾌한 달리기

영화 <플래시> 리뷰 및 분석


    경쾌한 디시 영화, 얼마 만인가 싶다. 연이은 실패로 흥행의 쓴맛을 보게 된 디시의 해답은 제임스 완 감독의 영화 <아쿠아맨> 이었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와 동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형태에 기반하면서도 영화라는 미디어 산업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인 컴퓨터 그래픽을 얹어 아쿠아맨을 탄생시켰다. 그래서일까? <아쿠아맨> 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킬링타임'의 영화를 띈다. 처음 관람할 때에는 화려한 그래픽에 현혹되어 넋을 놓고 보게 될지 몰라도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기억나는 것이 적은, 마치 일회성 소모품처럼 느껴진다.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을 이용해 본다면 공산품의 편리함에 놀라겠지만 시간이 흘러 오로지 편리함 외에는 기억할 것이 없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순간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 글을 쓰다 보니 플라스틱이 재활용이 어렵다는 것 또한 <아쿠아맨>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 <플래시>도 플라스틱 같은 영화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읽기 전에 "그래서 이 영화,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라고 궁금해할 당신을 위한 나의 의견은 "볼 만해."라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인 것 같다.


            아래에 내용은 영화 <플래시>에 대한 리뷰이자 스포일러를 내포하고 있음.          

            서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영화 산업의 관점에서 해당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따라 서술함.          


"과거로의 무거운 발걸음, 미래로의 경쾌한 달리기"



1. 이 영화, 다른 디시의 작품과 다르게 추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서사도 평이하다면 평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쿠아맨>과 같이 플라스틱 같은 영화라 단정 지을 순 없겠으나 영웅 서사가 가지고 있는 골조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생산된 공산품이라는 느낌에서 자유롭게 달려나가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공산품이 가지고 있는 도식성 속에서도 꽃 피는 사소하고도 미묘하게 나타나는 차이점들이 이 영화를 추천하게 만든다. 


세상을 구하려 하는 한 인물 짊어진 원대한 책임감에 눌려 고뇌하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에서 출발했던 주인공이 결론 부분에서 내린 선택은 마치 이 선택이 공적인 히어로이기에 내리는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내리는 지극히 모순적인 행위처럼 느껴짐에 따라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개인적인 고뇌라 불리는 일련의 선택들은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자행되는 이기적인 선택들로만 열거되어 있지 않으며 그러한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산뜻함을 유지하려 한다.


<플래시>의 분위기는 어둡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전달 방식마저 무겁진 않다. 그러한 점이 <플래시>를 가볍게 볼 수 있는 키포인트라 느꼈으며 이러한 연출 방식이 영리하다고 느꼈다. 영화는 다량의 농담 장면들과 '플래시'라는 캐릭터의 특징답게 관객들의 눈이 정신없을 정도로 새로운 장면들을 쏟아낸다. 세상을 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의 갈래로 채택된 스토리텔링 방식이라 해석하고 싶다.



2. 과거로의 무거운 발걸음, 미래로의 경쾌한 달리기


영화 속 주인공 '플래시'이자 '베리 엘렌'은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으며 아버지는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석방되기만을 기다린다. 베리는 그런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 특정 순간에 개입하면 어머니가 살해당하지 않는 미래를 그려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게 되어 다른 차원의 우주에 떨어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자기 자신과 벌어지는 사건들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된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 주제는 대거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영화는 이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에 등장하던 시간여행의 소재들을 언급하고 또 과거 배트맨의 배우였던 '마이클 키튼'을 다시 한 번 등장시킨 것, 다른 우주의 슈퍼맨에 대한 색다른 묘사와 다른 배우를 선정했다는 것 등을 통해 변곡점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인 소재를 넘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맥상통한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나타낼 것이냐'이다. "때론 정답이 없는 문제도 있으며 그저 놓아주면 된다."라는 대사가 곧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처럼 묘사되고 있고 나아가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을 운명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서술해준다.


필연과 운명 사이의 경계선 위를 달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고뇌하는 베리의 모습은 히어로의 이야기보다는 소시민이 갈망하는 행복에 대한 애절함 같은 감정을 유발한다. 결국 존재할 수 없는 어머니를 놓아주기로 약속하며 멈춰진 시간 속,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플래시의 눈빛은 대의를 위한 선택을 내릴 때의 그렁거림보다는 행복하고 싶었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회고의 한 장처럼 느껴진다.

시종일관 과거로 달리는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운 선택의 연속이자 잊지 못하는 추억에 대한 연민의 흔적들이라면, 영화가 끝나고 현재에서 달리기로 선택한 베리의 달리기는 경쾌하다. 과거의 플래시와 현재의 플래시가 동시에 다른 선택을 내리는 장면, 같지만 다른 두 인물의 달릴 때에 나타나는 번개의 색이 자석의 S와 N 극처럼 다르지만 결국 한 몸이었다는 점 또한 이 영화를 관람함에 있어, 또 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에 있어 중요한 '플래시 포인트' 가 될 것이다.



3. 토마토소스와 스파게티, 영화의 모든 것.


극중 토마토소스와 스파게티는 영화 속 등장하는 사건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이자 거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작중 묘사에 입각한다면 스파게티의 면을 다중우주라 표현하고 그러한 수많은 스파게티 속 필연적으로 교차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 교차점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으나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순간이라 말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표면적으로 가장 필수불가결하고 운명과도 같다 불리는 순간은 마치 배트맨과 슈퍼걸의 죽음이라는 순간이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겪게 되는 고난의 시작이자 그 매개체는 스파게티에 들어갔어야 하는 소스, 다시 말해 영화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나의 거대한 스파게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날 잊지 않고 스파게티 소스를 샀더라면,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일도, 아버지가 누명을 쓰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스파게티 소스야말로 운명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스파게티 소스는 다중 우주 속 과거의 베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된다. 스파게티 소스를 사지 않았던 현재의 베리와 스파게티 소스를 샀던 과거의 베리의 이야기이자 그 스파게티 소스를 뿌리느냐 뿌리지 않느냐가 미래를 결정하는 필연이고 운명의 순간이 된다. 결국 스파게티 소스를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게 되며 영화는 마무리로 향하게 되는데 그 순간이야말로 베리가 마주하게 되는 현재의 자신이 내린 가장 소중하고 가슴 아린 순간이 된다는 것이 토마토소스와 스파게티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해당 영화를 기점으로 디시 유니버스라 불리던 시리즈는 막을 내리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하기로 기획되어 있다. 그럼에 따라 이 영화는 디시 유니버스의 상징적인 작품이 되며 이후에 다루게 될 이야기들과의 연관성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놀랍게도 그간 디시의 행적이 영화 <플래시>의 행적과도 묘하게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고칠 수 없는 그 순간들에 대한 후회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결정과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떠안으려 했던 순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 디시의 운명이 마치 <플래시>라는 영화 속 안위되는 이야기의 흐름과도 같다고 느꼈다. 애석하고 또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단점


아쉽게도 영화의 기본 골조는 여전히 공산품 플라스틱처럼 느껴진다. 분명 감동적인 장면도 있고 상영이 끝나고 그러한 점들이 마음속 깊이 잠들었던 감정이라는 이름의 종들을 울려대지만 분명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이야기의 전달 방식이 중요함에 따라 다양한 시도가 곁들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 영화의 주요 볼거리가 되겠으나 동시에 영화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 또한 혹시 캐릭터 플래시의 성향에 빗댄 은유라면 고개는 끄덕일지언정 완벽하게 납득 갈 정도로 와닿진 않는다. <아쿠아맨>을 시작으로 디시의 영화는 상당히 조심스럽고 또 편향된 성격이 도드라진다. <플래시> 또한 그런 편향성에서 완벽히 자유롭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다.


근래에 할리우드에서 자주 대두되는 문제인 컴퓨터 그래픽의 미흡한 완성도 또한 아쉬운 요소이다. 잘 모르는 관객이 보기에도 어색한 순간들 또한 존재하며 플래시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특징인 빠른 속도의 액션 신들이 해당 영화에서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다는 점 또한 일부 관객들에게는 아쉬운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일각에서는 악당에 대한 서사가 빈약하고 그 묘사 또한 매력이 없게 느껴진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주인공 자기 자신이 내리는 선택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데 결국 마지막에 마주하는 악당 또한 자기 자신으로 묘사된다. 히어로 영화의 장르적 특색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악당이라 함은 타파되어야 하는 이상을 가진 존재이거나 또 일반적으로 사회 악으로 분류되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히어로 영화가 아닌 가족 드라마로 볼 경우 자기 자신이 악당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악당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 폭력과 화려한 액션이 가미되지 않고 비교적 담담히 전개되는 장면에 근거를 부여한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필자는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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