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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Mar 16. 2023

마이너스 인생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면 무슨 장르가 될까. 코메디? 다큐멘터리? 로맨스는 당연히 못 된다. 사실 알고 있다. 이런 번잡스러운 인생으로는 어떠한 영화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관객들은 모두 개연성이 엉망이라며 자리를 뜰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 나이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 다만, 애매하게 가난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우리는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런 가난으로는 지원을 받기에는 적은 가난이었다. 기껏해야 버스카드 찍을 때 잔액이 부족하다는 경고 정도나 익숙해지고, 물건을 살 때 통장에 잔액이 있는지 늘 확인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급식비를 못 낸 사람 명단에 단골처럼 오르고 학교 수학 여행비를 부모님께 받으면서 죄송함에 몰래 우는, 이르게 철든 학창 시절을 보냈을 뿐이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일을 쉰 적이 없었다. 다만 꿈을 꿀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는 일자리를 그 타이밍에 올라오는 구인 광고에 맞췄을 뿐이다. 서른 살이 넘어가서 어느 정도 경력도 쌓이고 집안의 경제 사정도 꽤 회복되어서, 내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회사에서 물어보는 질문은 한결같았다. 경력이 많은 건 좋은데 왜 이렇게 계속 다른 일을 하셨죠? 이런 경력은 마이너스인 거 아시죠?


마이너스인 거 아시죠? 자존심이 상했다.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삶에 대뜸 숫자를 매기려 했다. 하지만 반평생 을로 살아온 나는 알죠, 라고 대답할 뿐 적당한 말도 못 찾고 면접장을 나왔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면접장 나가면 그냥 동네 아저씨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뭘 안다고 감히.


가난했어도, 친구들이 대학에 다닐 때 경리부 막내로 복사기 앞에서 살았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나 자신의 구원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책임진다, 뭐 그런 말이랑 비슷한데 조금 다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는 더더욱 아니다. 내 인생을 플러스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유일하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우습게도 마이너스를 운운했던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합격 축하드립니다. 이미 꼬일 대로 꼬여버린 마음에 그 멘트까지도 웃겼다. 미묘하게 갑의 느낌이 났다. 보통 합격하셨습니다 라고 하지 않나? 자기들이 뭐라고 축하한대? 하지만 일자리가 급한 건 나다. 네 바로 출근 가능합니다…


출근날이 되어 반 정장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이렇게까지 차려입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은 눈치챘지만, 대충 첫 출근이라는 것은 조금 긴장된 것을 티 내고 하하 이 친구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네, 소리를 들어줘야 당분간 편하다는 것을 사회생활 과정에서 배웠다.


회사 로비로 들어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뜨는 이름은 엄마. 동생이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수술이 필요한데 부모님은 멀리 사시기에 보호자 서명을 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마이너스아저씨에게 전화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건을 봐줄 수 없으실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말,


그렇게 살지 마세요.


머리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크게 소리 질렀다.


씨발놈아, 너나 그렇게 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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