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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Mar 16. 2023

드라이 플라워

그 애는 종종 나를 꽃처럼 대했다. 생화가 아닌 드라이 플라워. 마른 꽃. 드라이 플라워는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꽃이라든가, 잘 말려져 있어서 더 이상 시들지 않는 꽃이라든가 하는 광고판을 내걸고 있어서 의미 있는 선물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나는 그것을 싫어한다. 살아있지 않은 꽃은 호흡하지 않기에, 먼지가 쌓인다. 털어내면 꽃의 머리가 함께 떨어져 나간다. 살아있지 않은 꽃은 견디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날 그 애는 술자리 약속이 있다며 분주하게 준비를 하곤 집을 나섰다. 멋지게 준비한 그 애를 보면서 새삼, 더 이상 나에게 멋지게 보일 필요성을 못 느꼈던 평소의 그 모습과 대비되어서 어쩐지 슬퍼졌다. 나는 여전히 그 애에게 보이는 모습이 신경 쓰이는데 그 애에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종종 싸늘한 시선이 아팠던 이유가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그 애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은 게 항상 불안했다. 사랑받는 증거를 자꾸 요구해야 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런 사랑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팠다. 짝사랑을 하는 것 같았다. 그 건조한 눈빛에 닿으면 자꾸만 내 마음이 퍼석퍼석 해졌다. 드라이 플라워처럼.


그 애가 떠난 빈집에 앉아서 생각하다가, 술 먹고 들어오면 차가운 것이 먹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그 애의 집 앞 편의점으로 갔다. 이것저것 고르고 커피도 한잔 샀다. 그 애가 들어올 때 안자고 맞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찍 들어오겠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에. 그 애 집 앞에 와서 알게 됐다. 나는 이 집의 비밀번호를 모른다. 바보 같았다. 입구에 주저앉아서 그래도 연락을 하면 답장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애는 카톡을 읽어주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가 쌓여도 받아주지 않았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3월 초. 오전까지는 날씨가 좋았는데 저녁이 되니까 귀신같이 추워진 날. 계단에 멍하니 앉아서 이게 뭘 하고 있는건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렇게 추운데 아이스크림은 녹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웃겼다. 


기다린 시간이 30분이 지났다. 손의 감각이 무뎌져갔다. 카톡도 전화도 계속 울리지 않았다. 재미있게 놀고 있구나. 그래도 핸드폰 정도는 신경 써주지. 일찍 들어온다고 했으면서.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마음속 드라이 플라워의 머리가 뚝 하고 떨어졌다. 


먼지가 잔뜩 쌓인 드라이플라워는 버려야 한다. 숨을 쉬지 못하는 꽃은 결국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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