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소중하지만 소박해요. - 영화 <유브 갓 메일>(1998)
“샐러드 주세요. 드레싱을 따로 주시고요. 애플파이 알라모드도 주세요. 파이는 데워주시고 아이스크림도 따로요. 아이스크림은 바닐라 말고 딸기요. 없으면 생크림으로 주시는데 깡통에 든 거면 안 돼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등장하는 맥 라이언의 유명한 대사. 나와 친구들은 저 대사를 모조리 외워서 만날 때마다 따라 하곤 한다. 우리는 서울의 작은 집에 모여서 수도 없이 많은 와인병을 비워냈다. 그 언저리에는 항상 맥 라이언이 주연인 영화가 재생된다. 어느 날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또 어느 날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유브 갓 메일>, <프렌치 키스>가 나왔고 이 작품들은 우리 앞에서 무한의 순회공연을 펼친다.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 맥 라이언일까?
나는 맥 라이언을 혼자서만 좋아했다가 동료를 만나서 넓고 깊게 빠져든 케이스다. 90년대에 태어나서 그런가. 나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90년대의 풍경을 사랑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따뜻하고 정감 있는 소도시가 그랬고 <접속>에서 컴퓨터로 채팅을 주고받으며 익명 뒤에 숨는 모습이 그랬다. 어릴 때부터 웬만한 영화는 섭렵했던지라 색다른 영화를 찾는 건 빈번했다. 그러다 우연히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고 완전히 빠져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시애틀과 현란한 조명으로 물든 뉴욕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극 중 맥 라이언이 연기한 애니는 긴 코트를 입고 보석 같은 눈을 가진 채 직장 동료와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거나 함께 소파에 앉아서 팝콘을 먹는다. 그리고 운명처럼 끌리는 사람을 위해 직접 먼 거리를 운전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선택한다. 나는 매 초마다 변하는 모든 장면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연스러운 표정과 멋스러운 옷차림은 취향과 맞닿아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 맥 라이언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밤새도록 영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서 해리의 짜증 나는 말투와 샐리의 음식 주문을 따라 했고, <유브 갓 메일>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사서 서점으로 출근하는 캐슬린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혹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속 애니의 잠옷을 보면서 사두면 안 입을 것 같지만 가지고는 싶다며 웃기도 했다. 여파는 다른 친구에게까지 이행되었다. 우리는 맥 라이언의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고, 가을이 되면 샐리나 캐슬린처럼, 겨울이 되면 애니처럼 옷을 입자고 약속했다. ”딱 너야. 미쳤어. “라는 추임새를 덧붙이면서.
포장한 피자를 함께 씹던 밤이었다. 타이밍 좋게 화면에서는 해리와 샐리가 무섭게 싸우는 장면이 나왔고 우리는 바라던 사랑을 얻지 못하거나 지난날의 사랑을 후회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좋아하지 않을까?” 근본적이고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현실에서는 맥 라이언의 영화처럼 꽉 닫힌 해피엔딩 식의 연애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만큼 불가능한 일이 또 있을까. 보고 싶은 마음에 피곤함을 무릅쓴 채 달려가고 밤새도록 곁에 있고 장난스럽거나 진지한 말을 주고받아도 결국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란 사람을 좌절시킨다.
문득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가 방황을 일삼다가 지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사랑을 말했거늘. 그거 하나 지키는 꼴을 보지 못하고 방해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빼앗기 위해 하루하루 저주를 내리는 것일까. 하지만 무작정 절망하진 않았다. 그런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지금 우리가 먹는 피자와 건배를 나눈 술잔과 사랑스러운 눈빛도 사랑임을 익히 알고 있다. 또한 혼자 밥 먹는 것이 걸려 굳이 식탁 앞에 앉아주거나 턴테이블과 LP를 품에 안고 퇴근길에 찾아오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먹었던 김치찌개와 뼈해장국의 미친 맛을 나누는 것도 그럴 테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세상에 사랑은 없어! “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연인관계에 한정된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다. 언젠가 한 친구는 우리끼리의 사랑이 너무 돈독하고 소중해서 연인에게 느끼는 사랑이 부족하다며 고백한 적도 있다. 처음 보는 나의 낯섦을 겪는 게 사랑이라지만 그보다 풍부하고 충만한 감정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사랑이다. 한 사람에게 끌리면 내면에 돌풍이 일어나기에 착잡하고 초조해지고 만다. 나는 적당히 불안하고 싶다. 친구들과 맥 라이언의 영화를 보면서 은은하게 퍼지는 차분한 순간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나에게는 그게 더 필요하다.
여름이다. <프렌치 키스>를 보면서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구매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분명 사놓으면 손이 가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쇼핑몰을 들락날락 거린다. 친구들은 젊지만 애매한 나이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간다. 우리가 예전만큼 자주 시간을 내지는 못하지만 맥 라이언 사진은 매번 주고받는다. 같은 말을 반복하겠지만 확실한 건 이런 행위를 지겨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다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어느 날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털어놓을 수도 있을 테다. 나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연애 같은 우정 속에서 소박한 사랑에 목소리를 달아주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만의 사유와 경험으로 사랑을 해석하고 진단하길 좋아한다. 무궁무진한 사랑의 정의. 그러니 사랑에 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평생 확실한 답이 없길 바란다. 샐리의 현실적인 사랑이나 애니의 운명적인 사랑이나 캐슬린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여러 갈래를 가진 사랑들처럼 말이다.
“밖이 71도인데도 춥다는 당신을, 샌드위치 주문에도 한 시간 걸리는 당신을, 날 볼 때 미친놈 보듯이 인상 쓰는 당신을, 헤어진 후 내 옷에 배어 있는 향수의 주인 당신을, 잠들기 전까지 얘기할 수 있는 당신을 사랑해. ” -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