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낭만이 사망선고를 받는 시대다. ‘간지’에서 ‘힙‘까지 오는 여정에서 낭만은 예스럽고 촌스럽고 먼지 묻은 단어가 된다. 사전적 의미로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낭만이란 통기타를 치고 조개껍질을 묶어 그녀의 목에 거는 종류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과 관련이 있되, 다른 질감의 낭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것만을 낭만으로 치부하다가는 정말 ‘낭만’이라는 단어를 역사 교과서에서만 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낭만은 현실과 진부한 소재, 그리고 추억의 교차이다. 전시회에 가거나 턴테이블을 돌리는 것, 남들은 모르는 과거의 물건을 아카이빙 하는 행위도 맞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침을 튀기며 대화하던 순간, 추잡스러움과 구질구질함, 엄마의 찬란한 과거, 사회문제에 대한 머리 아픈 고민 등을 전부 함축한다. 이것들을 현시점에서 회상한다면, 깔깔 웃거나 펑펑 울거나 의연하게 넘기게 된다.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동력으로 치환된다. 내가 생각하는 낭만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초등학생 때 <천국의 성 라퓨타>를 보았던 극장에서의 기억, 운전기사를 자처하던 엄마가 먼 거리에 위치한 학원에 태워다 주면서 불러주었던 운동권 노래, 언니와 <에이리언>을 보면서 초기 우울증을 인정한 경험, 산처럼 쌓아올린 순정 만화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흘렸던 눈물, 계절과 상황에 따라서 만들어놓은 수십개의 플레이 리스트, 이미 다 커버린 친구들과 물총을 쏘며 계곡에서 악착같이 웃었던 일까지. 나열하자면 분량이 <토지>에 버금갈 것이다.
혹 누군가는 어떻게 그리 많은 일을 기억하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기억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낭만을 꾸준히 나누면서 상기시켜 주는 연인들과의 대화다. 나는 구겨지고 바래지고 산뜻하고 촌스러운 낭만이 좋다. 비록 그때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항마력이 떨어져서 소리를 지르더라도 그 순간마저 사랑한다. 억지스러워 보이더라도 기억에 남는 사사로운 일을 낭만이라 치부하는 이유는 이들이 가진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거창한 것들은 생각보다 약하고 불필요하다.
나는 낭만을 먹고 산다. 주식이 낭만이라 할 정도로 배부르게 섭취하고 있다. 예전에도 인생에 재미가 없으면 진작 혀 깨물고 죽었을 거라 했는데 낭만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낭만은 거창한 게 아니다. 거금을 들여서 비싼 물건을 살 수도, 오직 특별한 날에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나의 낭만은 조금 다르다. 그저 매번 커피 수혈이 필요한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회색빛 아스팔트 속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귀여운 소품같은 것이다. 나만의 낭만은 값이 싸고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손 안에 넣을 수 있는 소박함과 다름없다.
앞으로 써 나갈 낭만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범벅된 추억이다. 그 안에는 특정 인물을 향한 맹목적 사랑, 책이나 영화, 음악과 관련된 경험과 생각, 그리고 나를 지켜준 연인들과 쌓아올린 추억이 담겨있다. 그깟 낭만은 내가 정의하기 나름이다. 국밥처럼 뜨끈하고 생선구이처럼 짭조름한, 케이크처럼 귀엽고 달콤한 낭만의 양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설레고 기대되는 뜨개질이 마지막까지 엉키지 않고 잘 연결되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사용하려고 한다.
당신의 낭만은 어떤 형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