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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낭만 Oct 01. 2023

그녀에 대하여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최은영(2016),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눈앞에 내놓은 친구들을 자주 떠올린다. 낯선 타인의 무례함에 치를 떨다가도 다정함이 서린 그들의 연락을 받으면 분노가 해소된다. 그래서 친구와 멀어지겠다는 다짐은 두 번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각오와 다를 바 없다. 동갑, 한 살 어린, 네 살 위, 열세 살 많은. 혹은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기, 동네에서 알게 된, ‘자주 가는 피부과나 미용실’ 등 친구들의 앞에는 나이나 알게 된 경로가 수식어로 붙는다. 마음의 결과 대화의 흐름만 잘 통한다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문장. 진부하지만 이보다 정확하고 안심할 수 있는 말도 없다.


자주 방문하던 가게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체대를 나와서 운동 신경이 좋았고, 키가 컸으며 흰 피부를 가졌고, 십 년 넘게 키운 반려견과 함께 살고, 이십 대 때는 자전거 한 대로 친구와 아스팔트 길을 횡단했으며 나이가 한 자리일 때부터 사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빨개진 얼굴로 웃기를 즐기던 그녀. 나와 그녀는 가게 직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짧은 인사, 다음에는 나의 칭찬, 그다음에는 빼곡한 대화. 그녀는 나를 귀여워했고 나는 그녀를 따뜻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맘때 나는 지독한 우울증과 사투 중이었다. 집 밖에 나가기를 거부해서 오직 병원과 부모님 댁만 오고 갔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만남도 가지지 않았다. 오직 이 굴레의 끝이 내 몸 위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원래는 낯선 사람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한다는 장점을 가졌지만, 질병의 습격은 그 장점을 희석시키고 말았다. 입을 여는 순간부터 이어지는 호구조사와 질문 폭격에 유연하게 응답할 수 없었고, 말을 꺼내면 십중팔구 나의 질병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최악이었다. 그래서 애당초 소심하고 말 없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포장했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불편한 옷을 입은 것 마냥 갑갑했지만 이마저도 보호막이라 여겼다.


불가항력인지 운명인지 그녀의 힘인지. 세 번째 만났을 때인가. 내 시선에는 그녀가 입은 금장 단추가 박힌 감색 재킷이 들어왔다. 외국 사립학교 교복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산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입은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했다. 내 말에 그녀는 친근감 있는 말투로 바꿨고,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서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 채 빼곡한 대화를 나누었다.


“저는 쌍둥이예요.“

“언니도 여기 자주 오죠?”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어쩐지, 저는 지금까지 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 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부터 친했던 사이도 아니고 나이차도 상당하고 가족이나 지인의 연결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나와 그녀는 편안하고 깊이 있는 말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그녀는 한참이나 어린 나에게 존댓말을 썼고, 꼭 ‘낭만씨’라고 불렀다. 또한 자유로운 연상을 망치는 특정한 고정관념이나 편견도 없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나를 보며 약해 빠졌다거나 불쌍하다는 대답 대신 감기가 빨리 낫기를 바란다며 손을 잡아주거나, 글을 쓴다는 말을 듣고는 돈벌이가 안 된다는 대답 대신 꾸준히 써서 자신에게도 보여달라며 쾌활하게 웃었다. 오래 보지 않아도, 자주 만나지 않아도 나는 그녀에게 일정 기한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광화문에 있던 낡은 건물, 그 안에 위치한 조그마한 가게에 가까워지면,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지 기분 좋은 고민을 했고, 그녀는 나를 마주하면 무료함을 반가움으로 교체했다.


우리는 따로 만나서 밥을 먹거나 여행을 떠난 사이는 아니었어도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했다. 일종의 벽이 있기에 적당한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어른과 덜 자란 성인이 친구가 되면 모든 선까지 허용하지 않는다. 그건 다행이었다. 모든 걸 까발리지 않아도, 온 마음을 내주지 않아도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건 구질구질하고 청승맞은 사랑만 추구하던 나에게 희소식으로 느껴졌다. 덕분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았고, 예의를 지켜가며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해가 바뀌고 거주지를 옮긴 뒤부터 그녀와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잘 지내고 있겠지. 무탈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바쁘고 골머리 썩는 일상을 보내다가 평탄함을 되찾기를 반복했다. 그녀도 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올해 1월, 언니는 그녀가 근무하는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대신 사장으로부터 그녀가 많이 아파서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얼마나 아픈지. 연락처를 알고 있음에도 함부로 안녕을 물을 수 없었다. 우리는 활자나 통화로 만남을 가지던 사이가 아니었고, 건강이 나빠지면 어떤 연락도 받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저 심각한 병만 아니길 바랐다.


가다 만 여름이 다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계절이었다. 언니는 오늘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고 전했다.  그녀는 언니의 카페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기 위해 외출했는데, 유리창 안에 있던 언니를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었다고. 그래서 용기를 내어 언니에게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언제는 용기를 내고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었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유쾌함과 활발함을 장착하고 있었지만, 예전보다 훨씬 야윈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 말기 암 선고받았어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녀가 고된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고 짐작했다. 낭만 씨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는 그녀.


묵직한 직육면체가 철판으로 떨어지는 소리. 끝이 둥근 몽키스패너로 두피를 내리치는 소리. 왜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끝은 너무도 일찍, 갑작스레 예견될까. 당혹감과 울적함만이 생각을 쌓아갔고,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메시지 한 통을 남겼다. 나의 쾌활한 성격을 좋아했고, 그녀도 웃음을 잃지 않았으니 애써 슬픈 기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똑같이 반가워해줬다. 낭만 씨의 메시지에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힘이 된다고. 오늘 언니를 아는 척했던 게 잘한 일이라 믿는다고. 언제라고 기약할 수는 없지만 다시 얼굴 볼 날을 기다리겠다고. 그때까지 두 사람이 잘 지내길 바란다고. 꾹꾹 눌러쓴 문장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면서, 그녀와 나눈 진실된 우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말이 있다. 멋지고 훌륭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은 빨리 떠난다고.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나온 말이라지만 자꾸만 서글퍼진다. 밀려오는 공허함을 감출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현세에서 사랑할 마음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처사라고. 그 사람들이 너무 결백하지 않겠냐고. 원망 어린 음성만 내뱉게 된다.


무한한 사랑을 꿈꾸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은 할당된 양이 정해져 있다. 신은 사람에게 각기 다른 수명을 그어주고, 딱 그 안에서만 사랑을 말할 수 있도록 명령하는 습성이 있다. 애인의 이름이 적힌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지나면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을 붙잡고 고백할 수 없는 것처럼. 모두에게 적용되겠지만 특수한 억울함을 일부러 감추기 힘들었다.


자꾸만 기적을 바라게 된다. 허무한 마음을 끌어안고 펑펑 울고 싶어 진다. 헛된 바람을 꿈꾸게 된다. 그녀가 조금 더 오래, 지상에 남겨진 사랑을 만나길 소망하게 된다. 또 만나자는 말. 얼마나 유효할까.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건강하고 청명한 그녀의 얼굴만이 지난한 과거처럼 떠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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