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자를 정말 좋아한다. 피자 외에도 라면, 떡볶이, 케이크, 아이스크림처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더러 있다. 그중에서도 피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생각날 만큼 자주 떠오르는 음식이다. 많이 먹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체중이 불어나기에, 눈앞에 있으면 딱 3조각만 먹지만서도.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포테이토 피자다. 구황작물 중에서 1, 2위를 다투는 감자와 고구마, 그중 단연 감자를 최고로 두는 사람인지라 피자에서도 감자의 담백한 맛이 일품인 포테이토 피자를 애정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고구마 피자는 진짜 싫다. 파인애플 피자만큼.)
포테이토 피자의 매력은 담백한 감자가 주축이지만 짭조름한 베이컨, 이들과 어우러지는 기본 토마토소스와 우아하게 누워있는 마요네즈도 한몫한다. 한 조각을 손에 얹으면 처음부터 감자가 입 안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첫 입은 따뜻한 치즈와 토마토소스, 쫄깃한 도우로 달구고 두 번째부터 고소한 감자가 침투하게 된다. 행복하다. 먹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불고기 피자, 콤비네이션 피자, 페퍼로니 피자, 치즈 피자. 하다 못해 요즘은 스테이크 피자나 뇨끼 피자, 타코 피자까지 나오는데 나는 여전히 포테이토 피자만 먹는다. (가끔씩 맛의 조화를 위해 페퍼로니 피자도 먹어준다) 원인이 뭘까 생각하면,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골짜기에 살던 해맑고 촌스러웠던 시절로.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외딴 시골에서 살았다. 배달 음식은 시내권에 사는 이모네 집에 갈 때만 먹을 수 있었다. 자극적인 입맛을 장착한 나에게 배달 음식은 맛의 천국이었고, 나는 시내에 가는 날을 종종 기다렸다. 그곳에 가면 평소 먹지 못한 음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으니까.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구석에 있어도 속세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조금 귀찮지만 30분 전에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한 다음, 차를 타고 시내에 있는 매장까지 직접 가는 방법이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아스팔트까지 도달하는 길은 지루해 보여도, 나에게는 설렘이었다.
그날 픽업하는 음식은 피자였다. 피자를 너무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선물을 준 것이었다. 엄마가 전화한 피자집의 이름은 피자헛, 도미노 피자, 미스터 피자와 같은 유명 프랜차이즈가 아니었다.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로마노 피자라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시내권에 사는 아이들 중 로마노 피자를 아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로마노 피자에서 파는 피자는 내가 포테이토 피자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그 집의 포테이토 피자 위에는 마요네즈 대신 허니 머스터드가 올라간다. 감자는 다른 피자보다 훨씬 크고 길쭉하며, 토핑도 아낌없이 들어가 있다.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차고 중독성이 강해 질리지 않는 장점을 가진다. 로마노 피자의 포테이토 피자는 어린 내가 첫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이었고, 나는 포테이토 피자를 사랑하는 성인으로 자라났다.
지금은 머스터드가 올라간 포테이토 피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 큰 나에게 노란빛의 머스터드가 올라간 피자를 선보이면, 아마 인상을 찌푸리며 도망갈 것이다. 그만큼 내 입맛은 대중적인, 마요네즈가 뿌려진 포테이토 피자에 맞춰진 거겠지. 취향을 생성해 준 근원이 되는 피자를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은 슬프다. 로마노 피자가 들으면 서운해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포테이토 피자 자체를 배신한 건 아니니 너무 마음 아프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밀가루, 치즈, 감자, 베이컨, 마요네즈, 토마토소스는 포테이토 피자 안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다. 혼자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파인애플 피자나 모두가 같은 가면을 쓴 페퍼로니 피자와는 엄연히 다르다. 물론 누군가는 감자의 존재가 튄다고 지적하겠지만, 감자는 다른 재료와 손을 잡으며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포테이토 피자는 내가 추구하는 공동체와 결이 비슷하다.(내가 파인애플 피자를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혼자 나대서...)
초창기 한국 피자 라인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고 대부분 사람들에게 익숙한 맛을 선사하는 포테이토 피자. 자주 찾지 않더라도 가끔씩 생각나는 추억의 맛. 새로운 피자집에서 선택의 어려움이 다가오면 믿고 택하는 메뉴. 나에게 포테이토 피자는 가만히 앉아서 상대를 향해 웃어 보이는 스타일의 사람이자, 균형을 깨트리지 않고 쭉 고수하는 안락한 사람이다.
뜨끈한 국물이 자주 땡기는 추운 날씨지만 그래도 노릇노릇한 피자는 먹어줘야지. 시대나 계절이 변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을 내쳐서는 안 되니까. 이 우정은 피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까지, 내 쪽에서 먼저 등 돌릴 우정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