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활기찬 듯 지루해.
크고 재미난 사건이 벌어질 듯하다가도 ‘내 인생에 뭐 하나 획기적인 것이 있었나’라는 무력함에 빠져.
돌이켜보면 여름은 항상 아련하고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 ‘돌이켜보는 여름’이란 그렇지. 당장의 여름은 그렇지 않아. 내년이 되면 이번 여름도 그럴까?
습하고 더운 날씨야. 나는 여름에도 긴팔을 꽤나 고집하는 편이지만 겨드랑이가 축축해질까 봐 셔츠를 조금씩 포기하고 있어. 이러다가도 변덕으로 인해 다시 셔츠를 집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래. 네가 입는 셔츠는 좋다. 핑크색, 하늘색, 아이보리색..... 다채로운 너의 셔츠를 보는 건 네 옷장을 보는 것과 같아. 책장과 마찬가지로 옷장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믿어.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사실은 내 품에 따끈한 생명체가 있다는 거야. 나는 고양이보다 강아지랑 친한 타입이라 친구의 강아지를 자주 맡아주는 일이 참 즐거워. 12시간에 한 번씩 밥을 챙겨주고, 두세 번씩 산책을 나가고, 입과 등과 발을 닦아주고, 간식 앞에서 부리는 애교를 보고. 그래서 시야가 조금 넓어졌어. 내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어. 인간만이 지구를 채우고 있다 여기는 사람에서 다양한 생명에게 정을 붙이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나에게도 와버렸네. 이건 환영할 일이야.
최근에는 글쓰기가 더뎌. 개인적인 감정과 생활을 담는 글을 얼마 만에 써보는지 몰라. 그동안은 소설을 썼어. 원고지 80매에서 100매 안에 들어가는 짧지만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길게만 느껴지는 그런 글을.
마감이 있던 7월 초까지는 아득바득 써서 완성했는데 그 이후부터 쓰고 싶은 글이 없어. 뭘 쓰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 내 안의 사랑이 빈약한 걸까? 사색이 부족한 걸까? 스스로가 시니컬해지고 있다는 걸까? 글을 쓰지 않고 보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의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아 걱정이 돼. 메모장에 적어놓은 주제를 지면에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언젠가 쓰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어. 이런 내 모습도 꼭 지루한 이번 여름 같다.
주절주절 떠드는, 두서없는 글을 뱉고 나니 아주 조금 후련하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글을 써서 부채감을 아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아, 그건 불가능하지? 그런 기분은 한낱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마음을 비우고 싶어. 그 바람이 장기적으로 흐르지 않아도.
아까부터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고 있어. 부단한 노력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며 내일의 나를 잘 다독여 보려고. 안 될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처음부터 말했던 것처럼 ‘일단’은 해볼래. 여기에선 그래도 되잖아. 이건 비우려고 쓰는 글이니까.
계절이 바뀌면 또 올게. 일단은, 그러려고 해 볼게.
두 번의 계절이 바뀔 때 올 수도. 하지만 꼭 올게.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