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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18. 2023

우아한 이혼녀의 삶

우아한 복수 2. 프롤로그


 세상에 왜 이리 서글픈 여자들이 많은지. 브런치를 쭉 보다 보면 이혼문학이 하나의 장르인가 싶을 정도로 기구한 여자들의 생존기가 또 다른 이혼을 겪은 나의 가슴을 친다. 이혼을 하고 싶지만 결심이 안서는, 혹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이혼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건 간에 우리들의 슬픈 이야기는 인기글이 되어 메인에 뜨고 또 뜬다.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추가적으로 이혼 커밍아웃을 할 때 '말하기도 입 아프니 그냥 브런치를 봐라. 니들이 모르던 궁상맞은 네 친구의 지난 아픔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알렸다. 기가 막히고 코도 막힌 친구들은 감상평과 더불어 나를 대신하여 욕과 저주를 퍼부어 주었지만, 결국 그 대화의 마무리는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친구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내게 대견하다고 했다. 나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이 말에 위로받았다.


 내 인생을 그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지만, 내 삶의 상처를 꺼내보이고 그 위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여주는 그들의 애정을 기반으로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우아한'의 타이틀을 단 글을 쓰다가도 카톡에서 친구들과 욕지거리를 했고, 때로는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우는 바람에 누군가를 당황시켰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 눈물에 같이 코 끝 찡하다가도 안구건조증 걱정은 없겠다며 깔깔대는 바람에 다시 디저트나 오물거리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슬픔을 적절하게 위로할 줄 아는 그들이 대견하다.


 이혼을 겪으며 가족들과도 사이가 더 가까워졌는데, 사실 이 부분이 제일 감사하다. 특히 엄마는 내 글을 읽고 미처 몰랐던 내 감정에 깊은 공감을 해주었다. 혹여나 남아있을 내 어린 시절의 상처나, 결혼 생활동안 알아주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미안할 일은 아니어도, 나는 잘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도 아이가 있기 때문에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내 아이 어떤 심정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혼 진행과 동시에 시골로 데려온 덕에 원 없이 바깥놀이를 즐긴 것은 참 다행이었다. 아빠야 원체 잘 안보였기 때문인지 일절 찾지도 않는 데다가, 매일 변하는 꽃들과 길거리 흙장난에 빠져 낮잠 잘 시간도 부족했다. 나무에서 갓 딴 버찌를 먹고 동그란 눈이 되어 배시시 웃던, 햇살아래 반짝이던 아이의 얼굴은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순간 TOP5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이혼가정의 자녀로 혹여나 겪을 슬픔을 나는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해 줄 수 없더라도 그 마음을 같이 견디어줄 자신은 있다. 비록 아이는 선택권도 없이 아픔을 짊어진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지만, 종류는 다르더라도 고통을 제대로 겪어본 가장 가까운 어른이자 엄마로서 조금은 현명하게 인생을 헤쳐나가는 용기는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선택이 아이에게 미움과 아픔으로 남지 않기만을 바란다. 행복과 사랑으로 채워도 부족할 어린 시절 아닌가. 또 조금 긍정을 발휘해 본다면, 지지고 볶고 싸울 시간에 남편에게 줄 사랑까지 몰아서 두 배, 세배로 마음을 쏟을 수 있다고 위로해 본다.


 도둑이 제 발 저린 심정으로, 누군가 아이 앞에서 '아빠'소리를 하면 나는 괜히 아이의 반응 먼저 살피며 조금은 침체되기도 한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어쩌면 아주 적당한 모범답안을 만들어 그런 이야기를 초반에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좀 더 천천히 생각해 보자.


 기존에 나를 수식하는 말에서 누군가의 아내가 빠진 자리에 싱글맘, 돌싱 뭐 이런 단어들이 추가되더라도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삶에 주어진 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해결해 나가는 중이니 말이다.  


 늦은 밤 글을 쓸 때면 '토다다다닥' 하는 경쾌한 탭핑에 마음이 일렁인다. 감정을 풀어내는 언어가 비규칙적인 속도와 강약으로 조용한 소음을 낸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다. 이전 글들을 다시 보면 어떤 부분에서 피식하게 되는데, 얼마나 쉼 없이 써 내려갔는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쓰다가도 어떤 부분에서 화가 치밀어 비속어가 섞인다. '이러지 말자' 하면서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다가,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하며 자판을 부수듯 쳐대던 모습이 글 곳곳에 배어있다. 뭐 어떤가,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솔직한 글을 쓴 것인데.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제 판결문 도달을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이미 이혼은 된 것이다. 판결문 도착과 동시에 법적인 부분을 정리하기 위해 법무사와 사전에 상의를 해두었다. 행정처리를 똑 부러지게 해내며 나는 새로운 기반을 다질 것이다.

 이제 보다 더 성숙한 삶이, 나의 우아한 복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에서 더욱 나아지고 행복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삶은 더없이 소중하다. 











타이틀 이미지

ⓒ jaime_monfort,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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