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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Aug 05. 2023

행복의 조건

부모의 자리

 

 얼마 전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치렁치렁 내려오던 긴 머리를 조금 다듬고 산뜻하게 염색을 했다. 뭐 실연한 사람들이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그런 종류의 이유는 아니고, 그저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간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새치가 말도 못 하게 많아졌고, 머리는 너무 많이 길어 오죽하면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엄마 머리 길어' 라며 만지작거릴 정도였다. 이 정도로 자연인으로 지낸 적은 성인이 된 후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오래간만에 헤어스타일을 바꾸니 기분이 좋았다. 뽀얗게 화장을 하고 옷도 제대로 갖춰 입고 거리를 걸으니 얼마 전까지의 시골 생활이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이제 다시 현실에 발을 디딜 차례인 것이다.





 밀린 일들을 몰아서 하기 시작했다. 이혼 후 가장 귀찮았던 일 중 하나가 그와 엮여있는 공과금이나 서비스 등을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여기저기 명의를 바꾸거나 해약을 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가 이미 해지했던 서비스를 재신청하는 것도 꽤번거로웠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해냈다.


 혹시 몰라서 아이 통장을 바꾸기로 했다. 통장을 해지하건 새로운 계좌를 만들건 여러 가지 서류들이 필요했다. 은행원이 적어준 서류를 발급하다 보니 '호적에서 파버린', 그 사라진 증명서들이 줄줄이 출력되었다. 아이의 기본증명서에 '친권' 란이 추가되어 있었다. 부모의 재판상 이혼에 따른 친권자 지정 및 신고인, 날짜 등의 상세 내용들.

 기분이 이상했다. 내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이미 삭제된 그의 이름이, 내 아이의 서류에는 버젓이 남아있었으니까. 언젠가는 설명해 주어야 할, 법적 서류에 기재된 모든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읽어보았다.


 첫 번째 면접교섭일. 그는 오지 않았고 물론 연락도 없었다. 그의 사정을 나는 알 길이 없지만, 굳이 예측하자면 내가 그의 아버지의 음란채팅 피싱 사건을 알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는 수치스러움을 느낄 때 도망친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그의 행동에 실소가 나왔다. 그는 끝내 아이와의 약속까지 저버린 것이다.


 솔직히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가 오더라도 나는 그런 집에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말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못내 씁쓸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끝내 스스로 아버지의 자리까지 내려놓으며 나에겐 인간 그 이하가 되어버렸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쪽팔림은 한순간이지만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은 점점 짙어질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길거리의 또래 아이만 보아도 괴로움이 온 정신을 지배할 것 같고, 이런 감정들을 외면하는 과정 역시 지옥일 것이라고.

 뭐, 이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나와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그가 내려놓은 자리는 내 차지다. 내가 굳이 '몫'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은, 그것이 내게 더 이상 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가 잘 받아들이도록 격려할 것이다. 물질적 혹은 사회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물려줄 것이다. 부족함을 '결핍'으로 느끼지 않도록 이겨내는 가르칠 것이다.  

 사실 나는 그가 오지 않아서 다행스러웠고, 오히려 먼 미래에 갑자기 아이를 찾을까 봐 두려웠다. 다신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와 그 가족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길 바란다.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지며 또렷해지는 우리의 삶, 그것이 진짜 우아한 복수니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거야."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거야."

 나의 이혼 스토리를 알게 된 가까운 지인들은 모두 이 같은 조언을 했다.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주변에서 간혹 보고 듣듯, 이혼 가정 부모들은 자주 상대방의 모습을 아이에게 투사하여 필요 이상의 간섭을 하거나, 혹은 아이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헌신하기도 한다.

 이해가 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드는 날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치명적인 단점을 절대 닮지 않길 바라고, 보란 듯이 잘 키우고 싶은 욕심도 든다.


 대부분의 육아 전문가들도 부모의 행복감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같은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그 '행복한 엄마'란 무엇일까.

 사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정의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지 않는가. 즐거움, 유쾌함, 편안함, 안정감, 충만함 등 '행복'이라는 단어를 치환하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또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어떠한 '특정 상황'인지, 혹은 일정 기간 유지되는 상태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나는 주로 행복한가? 혹은 어떤 때에 행복한가? 내 경우엔, 질문에 따라 행복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이는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느끼는 '행복감'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로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결국 행복이란 매우 주관적이며, 따라서 주체적인 삶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답이 남는다. 가질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돈이 많아도, 가족 혹은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이 많아도, 사회적 명성과 지위가 있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이혼 따위, 그깟게 내 행복을 망칠만한 것도 되지 않는다고 주문을 건다. 어두운 밤 작은 조명 하나에 의지해서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찰나가 내게 주어짐에 감사한다.


 아이를 재우고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며칠 간 쌓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생각한다. 이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새로운 행복이다.

 오롯이 내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용기가 생긴다. 나만큼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일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위로 한 마디 스스로에게 건네는 밤이면, 행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타이틀 이미지

ⓒ Valentino , 출처 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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