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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Aug 25. 2023

이혼후애(愛)

감정에 대한 고찰

 

 몇 달간의 이혼 조정 기간 동안 내 감정은 꽤나 뒤죽박죽이었다. 갑자기 쓸데없는 일에 분노가 치밀어 애꿎은 것에 화를 내기도 했고, 갑자기 희망적이 되었다가 다시 심각해지길 반복했다. 드디어 돌아버린 건가 싶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그때. 내 화는 산만하고 초점이 없었다.

 '기분이 태도를 결정하게 하지 말라'는 말은 명언처럼 자주 접할 수 있는 구절이지만 실제로 극한의 감정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저게 쉽지가 않다. 냉정하게 자신을 직시하기는커녕,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내 맘대로 슬퍼하지도 못하는 것에 또 다른 화가 치밀기 마련이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도 미안한데, 수시 때때로 울고 웃기를 반복하는 미친 여자 같던 내 옆에서 인내와 끈기로 함께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 힘듦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한, 그들의 헌신적인 돌봄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저 깊은 감정의 늪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문득 달력을 보다가 내가 '공식적으로' 이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체감상 최소 몇 달이 흐른 것 같은데 고작 이 정도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 짧은 기간 동안 모든 서류 정리를 해 치우고 집안 인테리어까지 바꿔버린 나 자신이 기특하고 짠하기도 하다.


 나는 분명 히루 빨리 더 괜찮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는 내 마음에 큰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눈에 보이는 것들이라도 빠르게 정리해서 생각할 여지를 없애버리려고 한 것이니까.

 나는 괜찮았지만 때로 괜찮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냉정하게 마음을 정리했다고 한들, 사람이 그렇게 프로그램처럼 삭제되고 재부팅될 수는 없다.


 환경을 바꾸니 묵은 감정이 새로운 에너지로 대체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만큼 몸을 움직이고, 다른데 관심을 쏟으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건강하게 해소가 된다.

 어쩔 수 없이 버리지 못한 가구나 생활용품 따위에서 가끔 그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화도 연민도 미움도 아닌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빼꼼 고개를 내밀면, 애써 피하려 하기보다 그런 생각이 흘러 지나가도록 시간을 주려고 노력한다.



'내려놓을 수 없는 감정은 모두 진지하게 대하라.'
<나는 왜 매번 불행을 선택하는가, 뤼진웨 지음, 이효선 옮김, 2022, p.174>


  중국의 유명한 상담가이자 칼럼 작가인 뤼진웨는 '내려놓을 수 없는 감정은 모두 진지하게 대하라.'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저자가 3만 명 이상을 상담한 사례를 토대로, 현대인의 심리문제가 대체로 원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마음의 힘을 키우는 4단계를 제시한다.

 어쨌든 나의 이혼에도 가족 간의 문제, 특히 원가족에서 해결되지 않은 심리 문제가 얽혀있었기에 조금이나마 이를 이해하는데 참고하고자 읽었던 책인데, 감정을 정면응시하고 현 상태를 돌아보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지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감정은 그것이 분명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느낌을 소환해 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p.180). 다시 말하면, 특정 감정을 겪을 때 드는 '느낌'이란 사실은 이미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으나 그동안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특정 감정이 올라올 때 언제든 활발하게 발현될 수 있고, 이를 이해하는 것은 내면을 치유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의 확인이나 결혼의 실체보다 더욱 깊고 분명한 의미를 갖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실제로 자신의 감정과 수반되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에 한 발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확실히 경험을 회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자신을 재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객관적 시선에서 스스로를 조명할 때 보이는 빈틈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심리적 허들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방향을 감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결혼생활도, 그도 결코 잊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든 머릿속에 Ctrl+Delete 기능이 없는 한 기억의 잔재란 남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지 사라지지 않을 경험과 기억은 반드시 다른 모양과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재가 사라진 후에는 개념과 추상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는 것은 모두 '과거형'의 '기억'이다. 어떠한 것도 현재 진행으로 형태를 구축하여 나를 옭아매지 않는다. 단지 기억에 의존하여 내가 불러일으키는 과거의 재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때로는 불쑥 튀어나오는 불쾌감일 수도 있고, 아련히 좋았던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다른 모양과 형태를 갖추며 언제 어디서든 등장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그러니 이제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달라진 시선으로 기억을 정비할 때다. '새로운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면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뤼진웨의 말처럼, 사실 만족감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좋았던 것을 왜곡하는 것도, 나쁜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도 내가 주체가 될 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그 모든 상처를 이겨내고 난 뒤엔


 주변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시간이 흘러 마음이 괜찮아지면 자유롭게 연애도 하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이다. 몇몇은 혹여나 내가 남자들에게 치를 떨며 왜곡된 의식을 갖거나, 혹은 아이에게 내 인생을 올인하는 삶을 살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이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다 나중일이니 미래의 나 자신이 평가하고 선택할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나의 가까운 주변인들이 이런 나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러 내 앞에서 자신들의 남자친구나 남편 이야기를 삼간다거나, '사랑'따위의 단어를 금기하지 않는다. 예전과 다름없는 대화는 상대적 불행이나 행복 따위를 무효화시킨다. 나는 변한 것이 많지만, 그들과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이 마음에 든다.  


 나는 분명히 아프고 상처받았고 좌절과 분노를 숱하게 겪었지만, 그럼에도 사랑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없다. 결혼이나 연애 등 남녀 간의 감정적 관계는 사랑의 수많은 본질 중 고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탈을 쓴 다른 감정들이다. 그러니 애꿎게 세상 모든 사랑을 저주하고 포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배워가야 할 사랑의 속성이 얼마나 많을까? 인생의 깊은 맛을 자아낼 묵직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들. 앞으로도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들과 더 깊은 우정을 쌓으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이를 배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길고 긴 이 배움의 여정을 통해, 그 모든 상처를 이겨내고 난 뒤에 맛 볼 인생을 기대한다.

 

 

타이틀 이미지

André Turner,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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