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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Oct 04. 2023

미래에서 온 메시지


몸이 약했던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땐 자주 아팠다. ‘자주’라는 단어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으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주일 시간표에 체육 시간이 들어있는 날마다 아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다는 것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던 우리는 그저 평범한 동네 아이들이었다. 그런 우리의 세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일 학년이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속한 반과 팀의 명예를 걸고 경쟁했다. 경쟁이라고 해서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었고, 피구와 축구, 줄다리기 따위가 초등학생들에게 주어진 경쟁 수단이었다. 그 모든 경쟁의 시작은,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 달리기였다.


허술한 손수레처럼 생긴 라인기가 몇 번 털털거리며 왔다 갔다 하고 나면 흙바닥에는 반듯한 흰색 줄이 그어졌다. 열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흰 줄 앞에 나란히 섰다가, 심장을 따끔하게 하는 총소리에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갔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이끌고 누군가는 결승선에 먼저 도착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리를 결승선 안으로 밀어 넣으며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다. 아드레날린이 가득한 오십 미터 구간을 아이들이 내달리는 동안, 옅어진 흰색 줄까지의 거리는 짧아져 갔다. 쿵쿵대는 심장보다 빠른 속도였다. 바로 앞 줄 아이들이 준비 신호에 맞춰 몸을 낮추었고, 탕 소리에 맞춰 튀어나갔다. 그들이 출발선을 떠나자마자 나와 함께 줄 선 아홉이 준비 자세를 취했다. 나도 무릎을 구부리고 주먹을 쥐었다. 탕!


내가 못달린다는 생각은 그날 이전에는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뛰어노는 것이 전부였던 삶이, 그러니까 뛰는 것은 노는 일에 포함됐던 삶이 다른 아홉 명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해야 하는 삶으로 바뀐다는 건 한 인간의 생에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건 달리기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던 삶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력과 경쟁이 삶에 들어오면서부터 삶은 서서히 재미 없어지기 시작한다. 달리기를 하고 나면 늘 일등과 이등과 삼등의 손목에는 별이 가득한 파란 도장이 찍혔다. 별은커녕 파란 잉크 한 번 묻혀 볼 일이 없는 운명이라면 재미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체육 시간에는 배가 아프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항상 아플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수행평가 날까지 현란한 줄넘기 스킬을 마스터해오라는 미션이 내려오면 눈에 띄는 운동 능력이 없는 나 같은 아이에게는 연습, 또 연습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C를 받을 테니까. 나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어린 생에서 이 정도면 꽤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종아리에 멍이 들고 발가락을 다쳐도 치욕의 C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지옥 훈련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단순히 못하는 걸 하기 싫은 마음이 아니었다. 못하는 걸 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못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삶은 결국 못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질 거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주로 하는 사람의 뇌는 긍정 회로가 크게 활성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뇌는 대부분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바로 긍정의 뇌. 이제 그 뇌를 쓰는 사람은 긍정적인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생각을 주로 하는 사람이라면 뇌의 부정 회로가 활성화된 탓에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삶을 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 테고. 그러니까 우리에게 뇌가 있는 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사실에 따르면 남들보다 못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에서 그는 못하는  투성이인 사람이  수밖에 없다. 못하는  자주 생각한다고 해서 못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있을까? 답은 아니요, . 못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방법은  하나다. 연습.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배만 아프게  ,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일이다. 못하는 것을 못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말은 다들 흥미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르다는 뜻이다. 그건 모든 사람이 ‘나는  일은 잘하지만  일은 못한다.’ 말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일을 못하는 것보다 중요한 , 나는 지금껏  일을 못해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 나는  일을 잘한다는 사실이다.


체육 시간마다 그렇게 배가 아팠던 시절이 지난 뒤에 보니 병이라는 건 대부분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 같다. 지금도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고, 경쟁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옥 훈련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경쟁을 배제한 배드민턴이나 탁구 같은 게 재미있다는 사실은 알고, 즐기는 운동도 있으니 모든 운동에 배가 아파지는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세상에, 운동과 재미라니. 그 무렵의 내가 듣는다면 두 귀를 의심했을 만한 단어의 조합이다. 만일 그때의 나에게 미래에서 온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면, 내가 배 아픈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못하는 일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왜냐면 뭔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나의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니까. 그 말을 전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대도 상관없다, 물론. 그런 것쯤이야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 알게 될 테니.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자라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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