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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Dec 28. 2023

족보보다 생생한 우리의 역사

올해의 화두 2


고사리 그림  |  <할머니>



지난겨울은 호박으로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븐에 구운 호박, 호박밥, 호박수프, 호박과 고구마를 섞어서 만든 빵 같은 것들 덕분에 겨울이 달았다. 호박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커다란 호박을 반으로 가르는 일이다. 일단 반을 가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별 것 아니다. 숟가락을 가지고 물렁한 속살과 뒤엉킨 호박씨를 파내고, 껍질을 자른 뒤, 또각또각 썬다. 반복적이고 고요한 노동.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그런 일들이 좋았다.


호박을 자를 때마다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호박씨를 파낼 때마다 한 숟갈씩 외할머니 생각이 선명해지는 것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외할머니는 호박을 자르면 파낸 호박씨를 씻은 뒤 채반에 널어 말렸다. 얼마 뒤 씨앗이 모두 마르면 나는 납작한 호박씨의 뾰족한 끝머리를 깨물어 틈을 낸 다음 손톱 끝으로 까서 안에 있는 고소한 알맹이를 하나하나 꺼내먹었다. 지난겨울 호박씨를 파내며 이것들을 말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귀찮은 일을 만들기 싫다는 마음에 매번 내다 버렸다.


외할머니는 산 아래에 있는 집 근처에서 채소밭을 일구었다. 자식을 여덟이나 낳고, 남편이 일찍 죽어 혼자서 다 키워냈으니 부지런함은 그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남은 흔적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존재하던 유년시절, 나는 봄이면 산나물을 캐고, 밭에 따라갈 때면 싱싱한 물이 가득 들은 연둣빛 오이를 따먹고, 어른들이 수확한 것들을 늘어놓고 앉아 손질할 때 옆에 끼어 일손을 거들었다. 그런 일들은 순전히 놀이였다. 도움이 되었을 리는 만무한데도 외할머니는 말없이 그런 놀이에 나를 끼워주었다.  


1920년에 태어난 학순은 내 외할머니가 되었을 때 이미 늙어있었다. 오래된 나무 같았다. 나는 학순이 너무 일찍 나를 떠났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가 내 삶에서 영영 사라지고부터 모든 게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상징하던 자연에서 떨어져 나왔고, 그가 알려준 오래된 지혜가 남 일이라도 되는 듯 멀찌감치 떨어져 자랐다. 이제 다른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세상이 되려면 먼저 흙부터 없애야 하는 것이었는지, 학순의 집 주변 유난히 붉고 누렇던 땅은 전부 콘트리트로 덮였다. 그건 내 유년에서 색깔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에 빌라들이 들어섰다. 이제 더 이상 옛날 사람처럼 산나물을 캐고 밭을 일구며 살 순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파트로 옮겨서 윗집과 아랫집과 양쪽 집들 사이에 끼어 살게 되었다. 뭔가를 캘 수 있는 흙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나는 학순을 잊고, 내가 누구인지 잊고, 다른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내 것이 아닌 삶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어느 날 꿈을 하나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명상을 하고 앉아있었다. 짙은 어둠 때문에 방의 경계를 알 수 없었다. 고요할 뿐이었다. 그때 나의 왼쪽 어깨너머에서 흰 연기가 조용히 흩어져 나왔다. 나는 그 연기만 보고도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안방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태우던 고단한 학순의 모습을 마당 건너 작은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곤 했었으니까.


꿈속에서도 그게 꿈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화했다. 나는 마음으로 학순에게 말했다. ‘이 꿈이 깨기 전까지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랑 뭘 하면 좋을까?’ 학순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했다. 그럼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 곁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학순은 좋다고 했다. 나는 누워서 아이라도 된 듯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죽음이란 어떤 것인지, 학순이라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질문에 학순은 걱정할 것 없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지금 이 꿈처럼 학순이 내 옆에 와서 앉아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스스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기다려 줄 거라고 했다. 그러니 다 괜찮을 거였다.


마치 옛날이야기 속이라도 되는 듯 이웃 닭이 울었다. 인간 세상의 소리가 꿈속으로 스며들었다. 머지않아 이 꿈이 끝날 거라는 걸 알았다. 나는 학순에게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어요?’라고 물었다. 학순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자식을 여덟이나 낳았잖어.’ 떠나려는 학순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할머니, 나는 아이를 낳지 않고 살기로 했는데, 그래도 괜찮을까?’ 학순은 또 웃었다.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이. 그리고 마음으로 말했다. ‘괜찮어. 전에 다 해봐서, 괜찮어.’


그 꿈을 꾸기 전까지 나는 유년을 빼앗긴 마음으로 살았다. 어쩌면 그래서 학순이 꿈에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리고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믿었으니. 그걸 알려주려고 이 세상을 떠나고 이십오 년도 더 흐른 뒤에, 나에게 가장 할머니가 필요하던 순간에 꿈속으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안다. 나이 많은 나무는 살아있는 동안 말없이 나에게 매일을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죽어가는 일에 대해 보여주었다. 우리가 보낸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걸 전부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인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내가 살 수 있도록 생명을 남겨준 뒤 혼자서 죽음으로 돌아갔다. 그가 심어둔 생명 때문에 나는 모든 게 나빠진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 테다.  


혼자서 여덟이나 되는 자식을 키워낸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이었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았던 외할머니에게 호박씨 하나하나 씻어 말리고 까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귀찮아서 파낸 호박씨를 내다 버리고 나중에 돈을 주고 말끔하게 까낸 호박씨를 사다 먹는 이상한 세상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지만, 학순이 심어둔 생명이 아직까지 내 속에서 빛나고 있듯, 같은 생명으로 연결된 우리가 다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역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호박을 반 가르고, 속의 씨를 파내고, 손에 호박 물이 노랗게 들면 한번 서로를 떠올리는 것이다. 나의 손과 닮았을 나이 많은 나무의 울퉁불퉁한 손마디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럴 때 과거는 지금에 포개져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날처럼 연결되는 것이리라.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이 오면 우리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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