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걸을 때 가시덤불을 잘 들여다보면 야생 블랙베리가 한창입니다. 크기는 산딸기보다 작고 질긴 씨앗이 가득이지만, 꼭 하나 따서 입에 넣습니다. 인사하는 일입니다. 자연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연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의식(儀式)입니다.
블랙베리 씨앗을 다 씹어 삼킬 즈음 모래언덕이 나옵니다. 솔잎이 떨어진 차가운 모래 바닥을 발바닥으로 감각합니다.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파랑이 눈앞에 가득 찹니다. 땅의 끝과 바다의 끝이 여기에서 만납니다. 두 세계가 교차하는 세계. 바다가 땅이 되고, 땅이 바다가 되는 건 달의 순환을 따르는 일입니다.
깎아지른 모습의 모래언덕을 달려 내려갑니다. 달려야 하는 이유는 모래가 뜨겁기 때문입니다. 뜨겁다고 멈출 수 없습니다. 멈추면 더 뜨거우니까요. 물기를 머금은 단단한 모래에 다다라 한숨 돌립니다.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좋아 일부러 꾹꾹 누르며 바다를 향해 걸어갑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발에 닿습니다. 최면을 거는 듯한 파도의 움직임에 이끌려 앞으로 더 앞으로 걸어갑니다. 부수려는 듯 달려드는 거대한 파도가 저만치서 밀려옵니다. 괜찮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파도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러고 나면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습니다.
파도 속에는 인류의 기억과 감정이 오래전부터 떠다니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치유받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다로 들어가는 일은 그들과 연결되는 일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연은 우리를 치유합니다. 그러나 치유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하나를 내놓아야 합니다. 바다로부터 치유를 받는 경우에는 추위에 대한 두려움을 대가로 내놓는 셈이지요. 강하게 붙들고 있던 두려움을 완전히 내려놓고 나면 치유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내리 꽂히는 파도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지요. 그러고 나면 새로운 나를 경험합니다. 말갛고 깨끗하고 살아있는 드문 나를 만납니다.
파도 속에 들어있으면 음양의 순환을 목격하고 서있는 작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밀려오고 떠나가는 물결에 발 밑의 지형이 변화합니다. 어쩌면 순환하지 못하는 이유는 놓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성취하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을 잃으면서 배우는 것이라고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일 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고 그걸 글로 만드는 연습을 해보았다면, 앞으로는 떠오른 생각이 물결 속으로 떠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쓰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었다면 쓰지 않는 나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공평할 테니까요. 손에 쥐고 있던 쓰는 습관이 물결에 실려 멀어져 갑니다.
바다에서 나와 숲을 지나는데 네댓 살 즈음되어 보이는 아이가 맞은편에서 블랙베리를 먹으며 걸어옵니다. 금빛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눈부십니다. “블랙베리 따기 정말 좋은 날이에요!”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며 인사합니다. 곁에 좋은 어른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이 말이 맞습니다. 블랙베리를 따기 좋은 날이고, 고양이와 누워서 아무 생각 하지 않기에도 좋은 날입니다. 바다에 들어가서 걱정을 씻고 오기도 좋은 날이고, 집 청소를 하기에도 좋은 날입니다. 쓰지 않아도 좋은 날입니다.
첫 글을 발행하고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글을 썼고, 그다음 글도, 그다음도, 모두 같은 이유로 쓸 수 있었습니다. 혼자 쓴 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저마다의 이유로 각자의 공간에서 글을 쓰면서, 그리고 읽으면서 연결된다는 사실이 정말 신비롭지 않나요?
못다 한 이야기가 많지만, 전하지 못해도, 닿지 않아도, 다 괜찮다는 걸 압니다. 그동안 다정한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쓰지 않는 삶이 익숙해지면 새로운 소식 전하겠습니다 :)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립니다. 계정 있으신 분들 알려주시면 팔로우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