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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Jan 23. 2024

항암기록지: 1차 항암_PART 2

알고 보니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다음 날이 되어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딱히 몸이 힘들지도 않았고 모든 게 평소와 같았다.


단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감기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코가 막혀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다음날에도 계속되었다. 분명 감기 증세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고, 코막힘도 없었는데 여전히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올 것이 슬슬 오고 있다는 것을. 말로만 듣던 부작용 중 하나가 왔다는 것을.


도세탁셀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는 입맛이 이상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음식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고, 심지어는 문자 그대로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침을 흘리며 탐낼 산해진미도, 냄새만 맡아도 입맛이 떨어질만한 맛없는 음식도 입에 들어오면 똑같이 이상한 맛으로 느껴진다. 먹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샌드위치와 커피 조합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조합마저도 맛이 없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병원밥은 어차피 맛이 없었기 때문에 별 맛이 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샌드위치는 달랐다. 재료를 뭘 넣든 내 입엔 무조건 맛있는 샌드위치가 맛이 없다니..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음식이 맛이 없어 우울한 기분을 느꼈다.


퇴원 기념으로 점심에 먹은 소고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게 고기인지 고무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고, 그저 질기기만 했다. 먹는 과정이 너무나 괴로웠기에 그저 빨리 식사시간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다행히도 집에서 사과와 키위를 먹고 한숨 잔 후, 저녁을 먹어보니 거짓말처럼 입맛이 돌아왔다. 모든 음식의 맛이 잘 느껴졌다. 이틀 만에 제대로 음식 맛을 느낄 수 있어 그저 행복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내가 좋아하는 맛을 느끼며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한편으론 여기서 이렇게 부작용이 끝나나? 싶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4일 차인 다음날이 되자 새로운 녀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작용은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닌, 시간 차이를 두고 차례차례로 온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또 그렇게 다음날 상상도 못 한 괴로움과 마주해야만 했다. 분명히 전날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김치가 맵게, 그것도 너무나 맵게  느껴졌다. 음식을 먹으면 목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음식 냄새를 맡으면 구역감이 느껴졌다. 항암치료 전에 찾아봤던 글에서만 보던 증상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일이면 어떤 부작용이 날 힘들게 하기 시작할까?‘라는 생각이 들며 걱정이 되고 우울해졌다. 마치 격투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다. 쉬운 상대를 가뿐히 이기고 나면 그다음 스테이지에서는 더 힘이 센 상대가 나오는, 끊임없이 나오는 상대들과 싸우며 내가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다가 결국엔 최종 보스를 힘겹게 이겨야만 끝나는 격투 게임.


하지만 그날 밤, 한 가지 좋은 일도 있었다. 암의 크기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항암약이 워낙 세기 때문에 암세포를 빨리 죽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단 한 번만에도 큰 효과를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비록 몸은 괴로웠지만 암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만큼은 편했다.


6일 차가 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작용 종합선물세트가 배달되었다. 온몸이 건조해져서 코 점막에서는 피가 나오고, 근육통이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근육통을 누르자고 진통제를 먹으면 마치 마취 총을 맞은 동물처럼 쓰러져 잠들었다. 졸린 게 싫어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온몸을 짓누르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어깨와 등의 통증이었다. 어깨와 등의 통증이 심해지니 허리를 제대로 펼 수조차 없었고, 그저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내 몸을 어딘가 꽁꽁 묶어서 작은 박스에 넣어 놓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백기를 들고, 어차피 누워만 있을 바에야 아프지 말고 잠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진통제를 먹었다.


그렇게 먹고 자고만 반복하며 시간이 흘렀다. 음식을 먹고 약을 먹으면 졸려서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깨면 배고파서 뭔가를 먹었고, 소화를 시킬 틈도 없이 약기운에 취해 또 잠이 들었다. 이틀째가 되던 날 오후, 잠에서 깨어 ‘도대체 이 짓을 며칠이나 더 해야 하는 거지? 답답해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약을 먹고 자다 일어나면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데 팔과 다리가 내 의지대로 잘 움직여줬다(!). 그리고 며칠 만에 뭔가가 적극적으로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바로 맥도날드의 트리플치즈버거였다.


그날 저녁, 마치 기적처럼 몸이 멀쩡해졌고 나는 트리플치즈버거를 먹기 위해 맥도날드에 갔다. 그날 먹은 트리플치즈버거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먹은 버거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심지어 아주 잠깐이지만 산책까지 했다. 분명 그날 점심시간까지는 몸에 힘이 없어 누워만 있었는데, 아니 누워만 있는 것도 힘들어 잠만 잤는데 몇 시간 만에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다니 굉장히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다. 며칠 만에 얼굴에 웃음이 돌아왔다. 집안을 벗어나 오랜만에 마주한 세상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세상은, 마치 해외여행에서 보는 멋진 풍경처럼 모든 것이 반짝였고 아름다웠고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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