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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Apr 17. 2024

첫 직장은 꿈같았고, 두 번째 직장은...

사장님 월급은 0원 2화 : 나는 왜 이럴까?

사실 찐 인생 첫 직장은 갤러리였습니다.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매거진에 관심이 많던 제가 어째서 갤러리로 갔을까요? 


저는 88만 원 세대라고 불리던 시절 대학을 졸업했어요. 그 시절엔 사실 월급이 88만 원 세금 떼면 80만 원인데... 그것만 받아도 다행이다라고 여겨졌었어요. 지금은 어떻게 80만 원 받고 일하냐고 하지만, 그땐 그렇게 줘도 일할 곳만 있으면 다행이었죠. 대기업이 아닌 이상, 일단 중소기업들은 다 고만 고만한 월급이었어요.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은 소규모 디자인 회사에 입사하기도 하고, 진짜 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아가며 밤샘에... 현장을 뛰어다녔었죠. 결국 그중 다수는 관련 전공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전 이미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한 번의 전과를 통해 실내디자인을 선택한 거였는데, 막상 전공을 해보니 적성에... 안 맞았.. 아니 그보다 그냥 잘 못했던 거 같아요. 욕심은 많았지만, 다른 친구들만큼 실력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열심히는 했지만, 잘하진 못했다. 가 정확한 표현인 거 같네요.


대학 시절 다양한 동호회 활동, 스터디 활동을 하면서 문화예술 기획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페스티벌 스터디도 하고, 페스티벌도 많이 다니고,... 그랬었죠.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너무 귀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그때 함께한 친구들을 여전히 만나고 있으니, 정말 좋았던 추억이죠. 기획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막 공연을 만들고, 페스티벌을 만들고, 전시를 만들고, 동네를 변화시키는 혁신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눈물의 0번째 직장.

그때 처음 생각한 건 매거진이었고, 다음으로 생각하게 된 게 바로 기획일이었어요. 그래도 나름 디자인 전공자이니, 미술과 관련된 전시 기획 쪽이면 일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군데 갤러리에 이력서를 넣었죠. 그렇게 한 곳의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봤습니다.


분명 모집공고엔 '큐레이터'라고 적혀있었는데.... 막상 업무를 시작하니, 아트샵 판매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갤러리에서 일하는 언니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그게 좋아서 다녀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하지만 놀랍게도 2달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을 겪고, 집에 펑펑 울면서 와서 다음날 퇴사하겠다고 말했어요. 같이 다니던 언니들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왜 하필 여길 첫 직장으로 온 거니... 진짜 다른덴 이 정돈 아닌데..."라고...ㅎ 근데, 놀라운 건 제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하고 나서, 다른 후배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는 거예요. 이때까진 몰랐습니다. 그냥 조직이란 원래 그렇다는 걸요.


그렇게 2달 만에 퇴사를 하고, 운 좋게 국비지원으로 웹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시 웹디자이너로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아무래도 국비 지원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워크넷 등록이 필수였고, 직원이 2-3명인 아주 작은 정체 모를 회사에서도 연락을 받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눈물 쏙 빼놓은 0번째 직장에서의 기억 때문에 너무 작은 곳은 가고 싶지 않았어요.


빛났던 경험의 첫 번째 직장.

그러다 운 좋게 연락 온 곳이 한 클래식 공연 기획사였어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연락을 받고 웹디자이너 계약직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진짜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됩니다. 상사도, 선배도, 너무 좋았고,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아티스트와의 프레스 데이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담당 사수였던 선배는 제가 다른 팀에서 운영하는 행사 운영에 참여하고 싶은 데 가도 되냐고 물으면, 흔쾌히 수락해 주셨어요. 자체적인 야근이 있었지만, 정말 즐겁게 일했습니다. 선배는 단호했지만, 따뜻한 사람이었고, 제가 디자이너가 되는 자양분을 만들어주신 분이에요. 일로 혼난 날이면, 저는 속상해서 화장실에 숨어 울고 왔는데, 항상 선배가 어깨를 토닥이며, "쑤연.. 오늘은 얼른 집에 가...~"라고 말해주는 정말 좋은 선배였어요. 제 사회생활의 멘토역할이 되었던 소중한 째니선배, 감사합니다. 아주 종종이지만,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낸답니다.


그렇게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직장 생활동안 모았던 돈을 가지고, 미국 여행을 2달 동안 다녀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직장을 잡게 되죠. 


트라우마가 생긴 두 번째 직장.

두 번째 직장은 핫해지기 일보 직전의 따끈따끈한 스타트업이었어요. 이때부터 제가 스타트업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생활에 진절머리가 나버린 계기도 되었죠. 한참 실리콘밸리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어요. 실리콘밸리식 회사 문화라며,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시기가 있었죠. 그래서 이름도 닉네임으로 부르고...ㅎ 규모가 작을 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운이 좋게 디자인팀 리더가 되었어요. 평등을 외치며 닉네임으로 부르던 문화가 리더에겐 독이 되는 걸 몰랐습니다. 일을 분배하는 건 당연한 건데, 막상 일을 분배하면, 나는 지금 하는 게 많다며, 다른 일을 받지 않는 팀원. 그래서 제가 죽어라 일하면, 또 혼자서 다 짊어진다며 뭐라고 하던 팀원.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거기다 그땐 제가 아주 미숙한 리더였어요. 매우 감정적이었고, 다혈질이었죠. 경력이 많은 팀장님들은 제 업무 스타일을 좋아하셨지만, 자유로운 분위기를 표방하던 곳이었기에 멤버들은 절 불편해하기도 했죠.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 비난, 유언비어까지... 와 이걸 다 겪으며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제 인생 최악의 방어기제를 세우고 살았던 시절이자, 제 사회생활에 트라우마를 준 회사였어요. 상사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멤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던 시간이었고, 이걸 극복하는데 약 8년의 시간이 걸렸다면 믿어지시나요? 제겐 일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회사이자, 책임감의 무게를 깨닫게 하고, 사회생활에서 관계와 규칙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회사였어요.


물론, 지나고 보면 그것도 경험이었다 웃으며 이야기하지만요. 그때 잘 맞는 좋은 친구들과 지금도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걸 보면, 다 나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나름의 사회생활 스킬을 획득했다 생각하며 다음 이직을 준비하고, 입사했다 나왔다를 수없이 반복했어요. 누군가는 인내심이 없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용기 있다고 말했어요.

매번 회사를 입사하고 퇴사할 때마다 내게 중요한 것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답해온 거 같아요. 이번 회사는 이렇게 다니지 말자. 다음 회사에 갈 땐, 이렇게 하자.라고 말이에요.


근데, 타고난 성향이 어디 쉽게 바뀌나요?

제 사회생활은 계속 험난했습니다.

다음화에선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느꼈던 이야기를 해볼게요!


오늘도 제 월급은 0원입니다.�




누구나처럼 평범하겠지만,

누군가에겐 용기가,

누군가에겐 도움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되면 좋겠어요.


<사장님 월급은 0원> 구독하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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