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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Nov 29. 2023

나의 덕후일기

8. 인연-두 개의 줄(feat. 모세춘길)

얼마 전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즘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유난히 뭔가 살짝 쓸쓸하다고 해아하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아서 라이브 방송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댓글창에 쓰는 글들도 온통 눈물이 난다느니 우울하다느니... 나의 귀한 밤시간을 다른 이들의 우울모드로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은 그래서 제대로 집중해서 볼 수가 없다.

전에 항상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고... 이런 말을 들으면 솔직히 팬의 입장에서는 서운함이 드는 게 사실이다. 조금 변화를 주거나 불편한 사항들을 수정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냥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니... 어떤 분들은 팬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팬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을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슴이 저린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분은 자기에게서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익숙하다고 했다. 늘 이야기하지만 연예인이란 직업이 팬들의 사랑으로 버티는 것인데,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마음이 변하고, 뜨겁게 타 올랐던 일명 팬심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기도 한다. 그러니 그동안 수많은 상황들을 겪으며 나름 자기 방어를 하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다만 떠나는 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서운함이나 원망 같은 것이 남아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6월에 트로트 신곡 [인연]을 발매했다.

콘서트 때 처음으로 들어본 노래인데 왠지 익숙한 듯 너무나 좋았던 노래였다. 뭔가 제대로 된 홍보도, 활동도 하지 못해서 그냥 그렇게 묻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다가 라방에서 [인연]이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분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의 시작을 서로 다른 두 개의 끈으로 표현하였다.

인연이란, 두 개의 끈이 나란히 가는 것, 그냥 평행선으로 나아가면 절대 만날 일이 없지만 어떤 계기로 살짝 각도가 틀어지게 되면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향해 그 거리를 좁히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좁혀진 거리가 드디어 한 뼘도 채 남지 않게 되고, 드디어 서로 조우하게 되면 서로의 인연만큼 두 개의 줄은 하나로 엮이고 절대 풀리지 않을 것처럼 꼬이게 된다고 하였다.


서로의 인연만큼... 꼬이는 인연의 줄이란 어떤 것일까?


그분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렸을 적에 아빠를 따라서 새끼줄을 꼬아본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가 하시는 걸 보면 정말 별거 아닌 듯이 손바닥으로 비비면 알아서 꼬아질 것 같았으나, 적당한 힘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빠의 손을 타고 꼬아지는 새끼줄은 모양도 이쁘고 튼튼하였는데, 어린 나의 손을 거쳐 나온 아이는 금세 풀어질 듯한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별 쓸모도 없었겠지만, 귀찮아하지도 나무라지도 않았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나곤 한다. 지금이야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으로 새끼줄을 꼬아볼 수 있을 듯하나, 옆에서 훈수를 둘 아빠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쓸쓸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나는 인연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 봤다.

서로 다른 평행선을 달리다가 어떤 계기로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할 만큼 아주 살짝만 틀어져도 두 개의 인연의 끈은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만난 두 개의 인연이라는 끈은 서로 원하는 만큼, 또 노력하는 만큼 하나의 줄로 꼬이며 단단해질 것이다. 단단한 꼬임으로 둘이 하나가 되어 그 인연을 이어나가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의 새끼줄과 아빠의 새끼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길래, 아빠의 새끼줄은 단단하고 아름다웠고 나의 새끼줄은 느슨하게 풀어지고 말았는가 말이다.

두 개의 끈이 하나의 아름다운 꼬임으로 만들어지려면 두 줄사이의 적절한 힘조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빠의 손바닥 위에서 적절한 힘조절로 비벼지고 굴려지며 하나로 꼬아진 새끼줄은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요령 없이 왼손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의 힘으로만 꼬아보려고 했던 나의 줄은 느슨하고 볼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이 아닌 양쪽의 적어도 비등한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 그렇게 단단하게 맺어진 인연의 꼬임은 영원할까?

정말 아주 작은 사소한 계기로 틀어진 방향으로 둘이 만나게 되었던 것처럼, 어찌 보면 인연의 꼬임도 그런 사소한 계기로 끊어질 수도, 꼬임이 느슨해져 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노력만큼 단단히 엮이는 줄이, 한쪽의 소홀함으로 모양이 틀어지고 느슨해지다가 어느 순간엔가 그 꼬임이 풀어져 하나였던 인연의 줄은 다시 두 개로 흐트러져 버리면 인연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라고 그분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한번 풀어져서 멀어진 인연은 서로 다른 길로 그렇게 또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완벽한 평행을 이루지 않는 한 두 개의 줄은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한번 틀어져 엇갈린 인연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한때의 끌림으로 시작하여 서로의 노력을 더해 하나의 줄로 꼬아진 줄이었으나 그렇게 풀어져 각자의 길로 떠났고 그러다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있을 터였다. 내가 생각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전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에 대한 실망만 더 커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헤어짐은 없던 걸까?


얼마 전 [세린디피티]라는 영화를 봤다. "우연한 행운"이라는 의미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던 영화였다. 워낙에 오래전 영화이기도 했고 내용이 살짝 황당하기까지 했으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를 잊지 못하고 결국에는 다시 만나게 되는 로코영화였다. 우연이 계속되면 운명이 된다고 하였다. 억지로 운명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우연히 만나 엇갈린 운명이 되었으나, 이것이 필연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둘 사이의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엇갈린 인연은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고, 누군가는 채팅창에 깨진 그릇은 붙여 쓰는 것이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어디 헤어짐과 엇갈린 인연의 모습이 한두 가지 형태로 고정되어 있느냐 말이다. 나는 그렇게 무엇인가를 단정 지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생김새도 생각도 다르듯 각자의 헤어짐의 이유도, 각자의 사정도 다를 테니 말이다.

다시 만나서 새로운 인연의 줄로 엮이든, 또다시 각자의 길로 가든 나는 일단은 다시 만나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 춘길의 인연 / 유튜브-가수왕 모세 트로트왕 춘길 ]

www.youtube.com/channel/UC2GNplAJ7zSOrC3c7yrw6Kg?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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