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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남 Apr 18. 2023

8. 오산비행장의 겸손한 대위

삼십 년 만에 다시 음악을

2014년 늦가을의 어느 저녁, 예고도 없이  대학원에  다니던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우리는 전혀 몰랐는데 아들에게 물어보니 둘이 사귄 지가 꽤 오래되었고, 여자 친구 아버지가 결혼을 재촉하신다고 하였다.

우리는 착해 보이는 아이가 마음에 쏙 들었고 따져볼 생각도 없이 그저 아들 하자는 대로 따랐다.

아들은 여자 친구 부모님이 원하시니 빠른 시일 안에 상견례 날자를 잡겠다고 했다.


상견례가 약속된 12월에, 수년 동안 장롱에 처박혀  있던 양복을 세탁하여 입고, 유명한 고척동의  한정식집에 갔다.

예비 사돈과 마주 앉아 미리 생각해  두었던 덕담을 주고받았고, 음식이 나왔다.

이 식당은 음식을 한 번에 차려주는 것이 아니고, 서양식처럼 몇 번에 나누어 나오는  방식이었다.

처음에 샐러드와 잡채등이 나왔는데, 모두 먹었는데도 다음 음식이 나오지를 않았다.

준비했던 덕담은 다 했고 어려운 자리다 보니 어색해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영 머리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아들이 기다리다 못해 벨을 눌렀고  방문을 연 여종업원은 '죄송합니다. 예약하지 않은 손님들이

갑자기 많이 오셔서 음식이 조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갑자기 오래 전의 그 일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머리 한편으로는 '왜 내가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하며 반응을 보니 사돈댁 식구들 모두 재미있게 듣는 것 같았다.


 '1980년대, 나는 주한 미 8군의 전속인 8인조 쇼밴드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베이스기타 연주자로 일했어요.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컨트리뮤직으로 미국 서민들이 주로 즐기는 음악이었지요.

우리 밴드는 전국의 미군부대 내 클럽을 순회 공연 했는데, 특히 오산비행장의 하사관 클럽에서 요청이 많았어요.

클럽의 무대 앞 테이블들은 빨간 모자를 쓴 일명 RED HORSE 라 불리는 공병대원들이 차지하고, 열광적으로 우리의 연주를 즐겼어요.

하루는 공연 중 쉬는 시간에 클럽 매니저 대위 한 사람이 대기실에 왔어요.

매니저는 우리에게 대위를 공병대장이라고 소개했어요.

그러자 대위는 '우리 공병대는 최근 공사한 특수시설이 잘 완성되어  사단장에게 표창을 받고, 상부에 추천되어 나는 소령으로 진급이 결정되고, 본국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나는 그동안 고생한 대원들에게 내 사비로 다음 주 토요일 야외에서 바비큐파티를 열어주려고 해요. 그런데 나는 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밴드를 초청하고 싶지만 나에게 공연료까지 지불할 여유는 없어요. 하지만 낮 공연은 당신들의 야간 공연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 한 시간만 연주해 주고 대원들과 같이 바비큐를 즐기시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우리들은 열렬한 팬들인 공병대원들의 파티 무료 공연에 모두 다 쾌히 승낙했어요.

다음 주 토요일. 우리는 부대에서 보내준 버스를 타고 활주로가 보이는 잔디밭에 도착했지요.

벌써 푸른 하늘로 고기 굽는 연기가 피워 오르고 대원들은 초원에서 맥주와 바비큐를 즐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단 한 사람만 일을 하고 있었어요. 대위는 러닝셔츠 차림에 흰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불판 앞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어요. 악기를 차리려던 우리는 이해가 안 되었고, 리드싱어인 조영길 씨가 대위에게 다가가서 물었어요.

'대위! 이런 일은 부하에게 시키고 파티를 즐기지, 왜 대장궂은일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그동안 부하들이 성실히 근무하여 주어서 내가 진급되었는데, 어떻게 내가 파티를 즐깁니까? 오늘은 고생한 대원들의 날이에요.' 하더군요.

나는 공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대위의 겸손한 행동을 보고, 미국의 강력한 힘은 겸손한 리더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고 분위기를 보니 모두들 재미있게 들은 것 같았어요.


상견례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집에 도착하면 아내가 '아니 당신은 점잖은 자리에서  무슨 엉뚱한  미군부대 이야기를 한 거예요. 창피해 혼났어요.' 하며 잔소리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했는데도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날 일을 하고 퇴근하여 집에 가니 아내가 '여보! 며느리 될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쩌면 아버님이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냐며 모두들 칭찬하더래요.' 하는 것이었다.

1980년경 주한 미 8군 TV GUIDE에 소개된 'GRAND OLD OPRY BAND"

뒤줄 맨 우측이 저자 김창남, 앞줄 중앙에 리드싱어 조영길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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