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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남 Apr 18. 2023

1. 조성진을 아시나요?

삼십 년 만에 다시 음악을

2015년 10월 22일 밤, 나는 경기도 구리시에 손님을 내려주고 계속 서울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전화기의 카카오 택시앱에 콜이 떴다.

이런 외곽지역에서 발생하는 콜 요청은 100% 서울 방향이므로 내용을 볼 필요도 없다.

최대한 빨리 터치하는 기사에게 선택이 된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선택되었다.

가끔 야간에는 분당이나 일산 등 서울근교 지역에 가시는 손님이 있는데, 손님이 내린 후 서울에 가는 손님을 태우기는 쉽지 않았다.

일부 기사들은 유흥가에 진입하여 버티면서 서울 가는 손님을 태워오는데, 지역 택시들의 반발도 심해서 쉽지 않았다.

나는 보통 경기권에 갔을 때 손님을 못 태워도 기다리기 힘들어 그냥 빈차로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

구리경찰서를 지나 시 경계를 거의 벗어날 때쯤 콜을 받은 것이었다.

출발지는 쉐라톤워커힐이고 목적지는 신림동이었다.

호텔 앞에 도착하자 차량번호를 확인한 젊은 여자 손님이 '기사님, 안녕하세요!' 하며 차에 올랐다.

가끔 이렇게 예의 바른 손님이 타면 기사도 기분이 좋아 더욱더 친절하게 된다.

워커힐에서 출발하자 곧 광장사거리에서 좌회전을 받아 천호대교를 건너 올림픽도로를 진입했을 때 손님이 물었다.

'기사님! 지금 듣고 계신 라디오의 93.1이 고정 채널 이신가요?'

나는 '네, 저는 원래 올드팝을 좋아하는데요, 최근에는 클래식음악을 많이 듣게 되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손님은 '제가 퇴근 시에는 택시를 항상 타는데 클래식음악을 듣는 기사님은 처음이에요. 그럼 어제 조성진이 폴란드에서 열린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것도 아시겠네요?' 하였다.

나는 사실 조성진이나 쇼팽콩쿠르도 전혀 모르는데, 손님이 실망할까 봐 나도 모르게  '네!' 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손님은 '벌써 조성진의 쇼팽콩쿠르 동영상이 유튜브에 떴어요. 제가 앞자리로 옮겨가면 안 될까요?' 하였다.

나는 '그러실래요?' 하며 비상등을 켜며 우측 갓길에 차를 멈추었다.

손님은 재빨리 앞자리로 옮겨 앉았고 차는 다시 출발했다.

손님은 전화기로 유튜브의 동영상을 틀더니,  '여기 이 부분은 너무 어려운데 정말 잘 쳤지요?'

하며 내가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그저 '네, 네, '하며 아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영상이  끝나자 나는 '손님은 피아니스트 이신가 봐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고교시절에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는데 집안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져 대학을 포기하고 요리사가 되었어요.' 하였다.

나는 '너무  안타깝네요. 아무리 힘들어도 음악을 포기하면 안 되지요.' 하였다.

카카오 비게이션이 현충원 앞으로 가라고 우측  차선으로 나가라고 지시한다.

나는 동작대교 밑을 지나 현충원 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렸다.

그때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고교 3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여 집과 가전제품 그리고 저의 피아노까지

압류가 되어 모두 빼앗기고, 달동네 월세 단칸방으로 이사 갔어요.

아버지는 곧 택시기사를 시작하시고,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다니셨지요.

저는 음대에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졸업직전 겨울방학이 되자 알바를 알아봤어요.

방학 때 편의점 알바는 자리가 드물어, 학생들 말로 막노동 뛴다고 하는 식당 설거지 일자리는 있었어요.

제가 일한 식당은 신림역 부근 개천에 있는 테이블이 10개인 작은 심야 횟집이었어요.

사장님은 오십대로 보이는 요리사이셨고 저는 사장님 시키는 대로 야채도 썰고 설거지도 했어요.

홀에는 사모님과 강한 사투리를 쓰는 언니 한 분이 일 했지요.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던 어느 날, 사모님이 아프셔서 출근을 못 하셨는데 문제가 생겼지요.

홀의 언니가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서비스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두 분의 여자손님과 언니가 다투는 소리가 나더니 언니가 주방에 들어왔어요.

언니는 사장님에게 '어휴, 힘들어서 일 못하겠어요.' 하더니 앞치마를 땅바닥에  던져버리고 옷을 입고 나가 버렸어요.

식사를 하시던 손님들은 어이가 없어했고, 사장님은 당황하시며 어쩔 줄 몰라하셨어요.

나는 냉장고에서 탄산음료와 컵 두 개를 가지고 불화가 났던 테이블로 갔어요.

그리고 공손히 컵에 음료수를 따라 드리고,

'죄송합니다. 오늘 사모님이 몸이 편찮으셔서 못 나오셨어요. 그래서 일손이 부족해 서빙이 부족했나 봐요.

마음 푸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하며 고개를 숙이자,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얘! 어린 네가 왜 대신 사과를 하니? 어휴! 착한 너를 봐서래도 내가 참아야겠다.'라고 하셨어요.

그 광경을 본 사장님은 '참 잘했다.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네가 홀을 맡아라.' 하셨어요.

얼마 후 그 손님들이 가시려고 계산을 하시더니 '착한 네가 보고 싶어 또 와야 될 것 같다.' 하시면서 팁을 이만 원이나 주시고 가셨어요.

영업이 끝나자 사장님은 나에게 고생 많았다며 고기를 사 주시겠다고  옆의 식당으로 데려가셨어요.

그리고는 '나는 너를 알바가 아니고 정식 직원으로 대우해 줄 테야. 네가 야채를 다듬을 때 보니까 손재주가 있더라. 그리고 공손한 너의 태도는 요식업계에서 모두 환영할 거야. 너만 좋다면 나의 요리기술을 모두 가르쳐주마.' 하셨어요.

나는 사장님에게 요리도 배우고 돈도 벌고 일 년 후에는 학원에도 다니며 자격증을 땄어요.

저는 최근 쉐라톤워커힐 일식당에 입사했는데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지요.

혹시 기사님도 저의 아버지처럼 사업에 실패하셔서 택시기사로 취업하셨나요?'하고 물었다.

나는 '맞아요. 7년 전 사업에 실패하여 나쁜 생각이 들었지만, 사십이 넘어 생긴 늦둥이 딸이 너무 어려서 마음에 걸렸어요. 내가 없으면 딸이 불행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비굴하더라도 딸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살아서 뒷바라지를 해야겠다 는 생각으로 곧바로 택시기사를 시작했어요. 쉬는 날에도 일하고 그동안 옷 한 벌 사 입어 본 적도 없고 친구들이 연락해도 안 만났어요.  이제는 딸도 한 학기만 마치면 대학을 졸업하지요.'

'고생 많으셨네요 기사님.' 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저에게 최근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사실 저는 젊었을 때 기타리스트로 미 8군 무대에서 15년간 활동했지요. 그런데 택시영업을 하다 보니 클래식음악에 심취하게 되었고, 지난여름에 갑자기 음악이 다시 하고 싶은 거 에요. 나는 30년 만에 기타를 구해서 다시 연습했지요. 그리고 작곡을 시도했어요. 그리고 두 달 만에 첫 번째 곡이 완성되어 너무나 기뻤어요. 뒤늦은 나이에 신이 나를 도와주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한 달 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유명 가수에게 악보를 보내 보았어요. 하지만 반응은 별로였어요. 그리고 나에게 '계속 열심히 곡을 만들다 보면 좋은 곡이 나올 거야' 라며 격려는 해 주시더군요. 저는 실망하지 않았고 계속 곡을 만들어 볼 거예요.  만일 손님이 현실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이 쉽지 않다면 작곡에 도전해 보시면 어떨까요? 창작은 위대한 거예요. 음악을 포기하시면 절대 안 돼요.'

서울대학교입구역에서 좌회전하여 다시 바로 우회전하여, 속칭 쑥고개라 불리는 동네의 언덕에 도착하였다.

계산을 마친 손님은 결심을 한 듯, 심각하게 힘을 주어 말했어요. '기사님 말씀대로 내일 당장 작은 전자 키보드를 사서 작곡에 도전해 보아야겠어요. 기사님 말씀 너무나 고맙습니다. 저의 아버지에게도 기사님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열심히 작곡하셔서 세계적인 명곡을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건강하시고 안전 운전하세요.'

차에서 내린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집에 돌아온 나는 인터넷에서 조성진을 검색해서 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유튜브로 쇼팽콩쿠르를 다 보고,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그를 천재라고 하자, 천재는 곡을 만든 작곡자 라고 하는 이야기에 공감이 왔다.

그리고 독일 엘로우라운지에서 조성진이  연주하는  쇼팽의 Ballad No.1 에 매료되었고 점차 쇼팽의 녹턴등을 섭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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