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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쑤 Aug 20. 2024

부정적인 해석을 멈출 것


부하직원 중에 유독 패션 감각이 뛰어난 직원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 팀엔 여자만 셋이었는데 그 직원만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 그녀는 이 대리였다. 이 대리와 비슷한 또래였던 정 대리는 유독 패션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팀장이었던 나는 평범한 회사원 수준이었다.


회사에 별도로 정해진 드레스 코드는 없었다. 각자 자유롭게 옷을 입었고 나 역시 그랬다. 나는 회사의 규정과 상관없이 나만의 드레스 코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세미 정장을 입었고 옷을 잘 입는다거나 못 입는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다.  


정 대리는 옷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다. 본인 스스로 패션 감각이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출근할때만큼은 옷을 잘 갖춰 입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며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매일 화장기 없는 얼굴에 비슷한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정 대리가 나에게 패션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면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나 역시 단정하게 입으려고 노력할 뿐 패션감각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에 나도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어서 나의 경험을 얘기해주곤 했다.


내가 주니어 시절에 다니던 회사도 드레스 코드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편안한 옷을 입게 되었다. 렌즈를 빼고 안경을 쓰고,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다 보니 옷을 갈아입어도 티가 안 났다. 회사를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외부 사람들과 업무적으로 만나게 되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자격지심이었다. 그래서 옷을 잘 입을 필요는 없지만 기본은 갖추려고 노력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도 옷을 잘 입던 이 대리가 유독 세련된 스타일로 출근했다. 대놓고 내색은 안 했지만, 팔다리가 길고 늘씬한 몸매의 그녀가 더욱 돋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정 대리는 이 대리에게 오늘 너무 이쁘다며 부러움이 담긴 칭찬의 말을 했다.


잠시 후 커피를 마시러 탕비실에 갔다가 정 대리를 만났다. 정 대리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팀장님, 오늘 이 대리 옷 너무 이쁘지 않아요? 어떻게 저런 코디를 할 수 있는지 부러워요.” “그러게 이쁘더라. 정말 패션 감각이 남다른 것 같긴 해.” 때마침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정 대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정 대리는 처음엔 부럽다며 얘기를 시작하다가 이내 우울모드로 빠졌다. 상대적으로 옷을 못 입는 자신이 비교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른 것뿐이라며 위로했다. 그런데 그때 정 대리가 나에게 물었다.


“팀장님도 정 대리 같이 옷 잘 입는 사람 보면 부러우시죠?”


“어? 어 그렇지 뭐.”


순간 당황한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자리로 돌아왔다. 정 대리의 말에는 부정적이거나 모욕을 주는 단어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살짝 비꼬는 듯한 말이기도 했지만 예의 바르고 공손한 말투였다. 정 대리의 말 자체에는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날 일도 아니었다. 근데 정 대리가 한 질문에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질문이 무슨 의미지? 나도 옷을 못 입는다는 의미인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도 본인만큼 옷을 못 입는데 내가 그걸 몰라서 나한테 확인시켜 준 건가?’, ‘지금 나의 패션 수준을 본인과 동일시한 거야 뭐야?’


아무 생각 없이 무장 해제된 상태로 있다가 공격당한 기분이었다. 처음엔 부러워하다가 비교하면서 우울해하더니 말 한마디로 나를 자기와 동일시했다. 나는 정 대리가 했던 말과 오전의 상황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생각할수록 나의 결론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인사를 하는 정 대리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퇴근길에 신랑을 만나기로 했다. 신랑 차를 타고 함께 귀가하기 위해서였다. 전철에서 내려 잠깐 기다리자 신랑이 도착했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그때까지 참고 있던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 오늘 진짜 열받는 일 있었어. 하루종일 열받아 죽는 줄 알았다니까. 생각할수록 열받는 거 있지.” 신랑은 무슨 일인데 그러냐며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내가 화가 나는 상황을 신랑한테 열심히 설명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점점 더 격해졌다.


신랑은 앞만 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중간중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을 물었다. 나는 신랑을 이해시키기 위해 열심히 설명했다. 그런데 말을 할수록 내가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자 신랑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본래부터 좋거나 나쁜 일은 없다.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지적한 모습이 바로 나였다. 나는 상대의 말을 그 자체보다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였다. 상대방이 한 말의 의도를 정확히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정은 더 악화됐다.


이제 나는 혼자만의 부정적인 해석은 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의 의도를 판단하려는 순간 생각을 멈춘다. 나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상대에게 다시 질문한다.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야?” 상대방에게 다시 한번 정확하게 의도를 확인한다. 상대방에게 의도를 확인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해석이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해석은 멈출 수 있다. 이제는 부정적인 해석을 하며 혼자 화내며 분노하는 행동과는 이별했다. 그것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중히 여기며 지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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