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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Apr 06.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15

15. 저 졸업할 수 있는 건가요? (1)


 코로나가 터진 시기는 한창 졸업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프랑스 음악원의 디플롬 졸업은 2년 차부터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 3년을 거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어떻게든 2년 안에 졸업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모든 수업을 다 따라갔고, 전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마지막 졸업연주만 통과하면 졸업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프랑스의 졸업 연주는 외부 심사위원이 점수를 낸다. 공정성을 가지기 위함이겠지. 나의 졸업 연주 프로그램은 교수님이 낸 지정곡이었다. 그러나 외부 심사위원은 프로그램이 너무 짧고 수준에 맞지 않다며 낙제를 시켰다.

 내 잘못이 아니지 않냐며 울면서 이야기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그때 나의 교수님은 그저 당황하며 서성였다. 이후 교장과의 면담을 가졌다. 교장은 이야기했다.


 “네 잘못이 아닌 걸 알아, 그러나 심사는 외부 심사위원이 이미 낸 것이고 그걸 우리가 바꿀 순 없어. 미안하지만 교수를 바꿔줄 테니 1년 더 다니면서 나랑 같이 더 공부해 보자”


세상에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을까.

나는 한 달 월세가 백만 원 가까이하는 파리에서, 린스 살 돈이 아까워 내 긴 머리를 엉킨 채 살고 있다. 이런 외국인 유학생에게 참 속 편한 이야기를 한 교장이었다.

 나는 이로 인해 학교 자체에 신뢰를 잃었고, 결국 유학 3년 차에 다른 학교로 편입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 학교는 나를 한번 더 무너트렸다. 분명 편입을 할 때, 전 학교에서 이수한 과목들을 모두 인정해 주고 그 해에 졸업 연주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졸업연주까지 다 마치고 졸업장을 받기 한 달 앞두고 말이 바뀌었다. 무조건 2년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뀐 말을 가지고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학교 측에서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학교는 내게 사전 고지해주지 않은 학교 특강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졸업을 철회했다.

 그렇게 그 특강 이수를 위해 1년을 더 다니게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면 유학을 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졸업이었다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원장과 행정관, 그리고 교수님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벌어진 일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속에 던져져 극강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허술한 시스템과 의사소통의 부재 또는 유급으로 한 학교를 3-4년씩 다니는 학생들도 사실 꽤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이 휘둘리는 상황을 보고만 있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유학 4년 차, 매주 행정실에 찾아가, 졸업과정을 하나씩 계속 체크해 나가는 귀찮은 학생이 되었다.


 그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6월 졸업을 앞두고, 학교 특강과 나머지 수업 일수만 맞추면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3월, 나라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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