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4.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8

08. 외로움 (2)


파리에서 느낀 외로움은 한국에서와는 차원이 달랐다.

가족도, 원래 알던 친구도, 아무것도 없는 이 척박한 땅에서의 외로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인간은 어딘가 소속되어 있을 때 안정을 느낀다. 물론 그 소속감이 나를 힘들게 하고 옥죄이며, 결국 그곳에서의 해방을 원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된다.


무인도에 나 홀로 산다고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순 없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 파리라는 무인도에 던져졌고, 점점 삶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중이었다. 그렇게 종교라는 매개체로 인해 생긴 작은 사회의 한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그 사회에서 나는 완전히 배척당했다.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일대일의 관계라면 분명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변심으로 인한 모든 이들의 침묵은 나를 무섭게 했다.

그래, 그들도 남의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하니 침묵을 택했을 확률이 크다. 그러나 이미 끈끈한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외국인 신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거리감보다 훨씬 더 큰 거리를, 같은 민족인 그들에게 느꼈다. 그것도 종교단체에서.




그래도 모두가 똑같지는 않다.

그중 누군가는 곁에 있었다.

어느 날 밤, 깊은 우울함에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앞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때 걸려온 한통의 전화. 한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여기 친구 사귀러 온 거 아니잖아, 음악 하러 온 거잖아.”


그 말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아, 나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그래, 나는 목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를 왔다. 이렇게 매일 밤 속상해하며 시간을 허비할 순 없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기고 주말에 성당을 나가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그러나 그럴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친구를 사귀러 성당에 간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주님을 만나러 갈 뿐이다.

그 주부터 나는 한국에서처럼 마찬가지로 미사만 드리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쯤, 그녀를 단둘이 만나, 그간 물어보지 못했던 나를 등진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는 내가 자기 친구들 흉을 봐서라고 했다.


어느 날 나는, 청년 중 한 명에게 속상한 일을 겪고, 그 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나에게 그녀는 그 당시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녀 역시 나 같은 친구를 사귀게 되어 감사하다고 울기까지 했던 사람이니까.


그녀는 나와 친해진 후, 성당 모든 일원들의 특징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내게 일러주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녀가 일러준 대로, 어떠한 행동을 나에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다.

“네 말이 맞더라”


그녀가 나에게 한순간 등을 돌린 이유는 바로, 그 당시 나보다 오래 알고 지내던 자기의 친구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냐고,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오래 파리에 있던 것 같다고 울던 사람이?)


아,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따로 반박할 이야기는 없었다. 위와 같이 네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어떤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

그제야 다른 모든 이들도 나를 냉대했던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그냥, 그렇구나.라고 말했다.

사과할 의향도 없었고, 나에겐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녀의 그들 눈에는 내가 친구 욕을 하는 나쁜 사람이든, 나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내 기준에서, 이렇게까지 큰 상처를 받아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유를 안채 나는 홀가분해졌다. 그녀는 화해하고 잘 지낼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이유가 왜 궁금하냐고 되물었다.


홀로 서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궁금해서.




고민을 없애려면 우주 공간에서 그저 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중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는 이 일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각자 생각과 결이 다르고 한쪽의 말만 들어선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아주 심하게 앓았던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오로지 내 주관에서 풀어 간 것이다.

나에게 전화를 한 친구 외엔, 그 당시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글로 풀어내니 조금 후련할 뿐이다.




이후에 그녀와의 관계가 궁금한가?

그렇게 서로 모르는 척 몇 년이 흘렀나, 여느 때와 같이 미사가 끝나고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집에 가려는데 무리 사이에 있던 그녀가 갑자기 인사를 했다.

도대체 무슨 마음에서 나에게 인사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인지 모르고 얼떨결에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부터 나는 그녀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며 지냈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저 웃으며 안녕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