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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4.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9

09. 알러지


프랑스는 유난히 꽃가루가 심한 나라다.

봄이 되면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랫바람처럼 꽃가루가 날려댄다. 그러나 날리는 꽃가루 공격과는 달리, 조경으로 손꼽히는 이곳의 거리는 아름답다.

Jardin de Palais Royal 빨레 후아얄 가든




나는 원래 약간의 비염은 있었어도 꽃가루 알러지나 다른 알러지들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내 눈과 입술은 붓기 시작하고 콧물이 미친 듯이 나며, 눈 주변이 다 까지기 시작했다.


가장 덜 심할때 모습이 이정도.


눈이 미친 듯이 간지러워서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입술 주변도 피딱지가 다 앉아버렸다.

악기를 불 수가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학교생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물론 병원을 방문했다.

프랑스는 병원을 가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Doctolip이라는 예약 사이트에서 예약을 하고 병원에 간다. 프랑스는 대부분 주치의가 있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주치의가 되어달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에 따른 서류과정을 밟으면 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보험카드(Carte vitale)가 필요하다. 보험금은 학교를 통해 진작에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드가 오지 않는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고 보험사에 문의를 하니 일 년이 지나 서류 한 장만 달랑 왔다.

아, 프랑스. 그래, 나 프랑스 살고 있지..

이러한 이유로 나는 주치의가 없었고, 병원에 가려면 최소한 이삼일, 길게는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파리 병원 투어를 시작했다. 이 병원을 다니고, 저 병원을 다녀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많은 약들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모두가 건강을 걱정하던 때 누군가 알러지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파리 외곽에 있는 빌쥐프의 한 의사를 만나 검사를 진행한다.

결론은 풀알러지였다. 꽃가루 알러지와는 달리, 봄에만 앓는 것이 아니라, 3월부터 10월까지 진행이 된다고 했다.

맙소사. 이건 겨울 외엔 그냥 고통 속에 살라는 말인가.


가족 중에 풀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있냐고 했지만 전혀 없다. 한국에 풀이 많냐고 물어본다.

물론이다, 이곳 프랑스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풀이 많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의사는 알러지는 원인과 이유를 모른 채 그냥 어느 날 생기고, 어느 날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렇게 나는 약을 처방받아먹으며 조금씩 나아졌다.


생각해 보면 진작 알러지를 의심했어야 하는데, 약을 먹어도 전혀 좋아지지 않았고 그전 의사들의 처방도 다 듣지 않았기에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이후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좋아졌고 약을 항상 대비해 먹기 시작하니 2년 뒤쯤부터는 고통의 정도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없던 병도 생기는 것이 유학생활인가.


이제는 시기가 되면 알아서 동네 병원으로 약을 타러 다닐 때쯤 의사 선생님께서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프랑스인 모두가 지금 시기에는 다 그래”


꽃가루로 고통받는 그들 사이에 어느새 나도 동화됐나 보다.


봄에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알러지약을 챙기길 바란다. 아름다운 공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으면 말이다.


5월의 Parc Montsouris 몽수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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