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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린 Jun 11. 2023

Part3. 내가 사랑한 미술관

오르세 뮤지엄(Musée d'Orsay)

몸이 으슬으슬하고 감기 몸살이 올 것 같은 느낌. 7:30 am. 열심히 울려대는 카톡소리에 옅은 잠에서 깼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문자들. 확인을 끝내고 뻐근한 다리를 벽에 올려 피로를 풀어본다. 8시가 됐지만 아직 캄캄한 밖. 어제보다 상기된 얼굴. 천천히 씻고 느리게 준비를 했다. 종일 비를 맞은 덕에 춥고 열기운이 돌아 옷을 더 단단히 입었다. 빈티지샵에서 3유로 주고 산 니트를 입으려다 조끼패딩에 후드티를 입었다. 긴 여행에 아프지 않은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코린이 준비해 준 파이와 네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고 길을 나선다. 공기가 차다.


약국에서 dry cough에 좋다는 시럽(herbalgem syrup)을 사서 5ml 마셨다. 맛이 꽤 괜찮았다. 오늘 일정은 M12를 타고 오르세에 가는 것이다.


오르세 뮤지엄엔 11시 반쯤 도착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의 그림을 모아둔 곳. 기대했던 만큼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오르세의 상징인 둥근 천장과 커다란 시계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 압도되며 입장했다.



2시간 정도 관람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1층만 돌아봤는데도 3시간이 훌쩍 지났다.

파리에 오기 전 열심히 들여다본 미술 책 덕분에 알아보는 그림이 많았다.


1월엔 뭉크의 특별전이 진행 중이었는데, 수많은 그림 속에서 나에게 가장 큰 떨림을 준 그림이 이곳에 있었다.

특별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비치되어 있던 뭉크의 자화상은 크기가 약 1m*1m쯤 되어 보였는데, 나는 왠지 뭉크가 그 속에서 관중들을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한 손엔 담배를 들고 ‘여기엔 무슨 일로 왔지?’ 차갑게 물음을 던지며. 파랑, 보라, 빨강, 검정 등으로 뒤덮여 있어 신비롭고 몽환적이면서 슬퍼 보이고 강해보이던 뭉크. 순간 몸에 전율이 흐르고 눈물이 고였다. 사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파들 앞에 박제된 그가 싸늘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을.


전시장을 따라 걷던 중 눈 덮인 뭉크의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원의 사람들을 그린 그림 앞에서 코를 박고 뚫어져라 그림을 살피던 할머니. 뒤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든 말든 고개를 들이밀고 요리조리 살펴보던 할머니. 얼마나 그곳에 서계셨을까. 할머니는 등이 굽고 눈이 커서 마치 튀어나올 것 같았는데, 나는 그 할머니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궁금하고 관심이 가는 만큼 들여다보고 마음에 담아 가는 할머니를 만난 것만으로도 모든 전시를 다 본 것만 같았다. 전시를 보며 얻어야 하는 모든 감정을 얻은 것처럼 나는 할머니에게 고마웠다. Merci 할머니!


오르세에서 꼭 봐야 할 인상파 작품 중 하나인 반 고흐의 초상화.

역시나 인파가 어마어마했던 반 고흐의 민트 배경 초상화 앞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마치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을 보는 것처럼 나는 경건해졌는데, 반 고흐가 정말 살아서 돌아온 것 같았다. 꾸덕한 물감과 역동적인 붓터치. 몸은 죽었지만 그림 속에서 그는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오르세에서의 두 번째 전율. 그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 찍는 내가 초라해졌다. 뭉크 그림을 바라보던 할머니처럼 코앞에서 그를 들여다보았다. 오래 담고 싶었다.


긴 오르세 관람을 마쳤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파리의 미술관에 또 와야 할 이유를 찾았다.

당시 작가의 힘과 숨결이 붓끝에 그대로 남아 묻어있다는 것. 그 힘과 질감을 통해 시대를 훑어보고 온 듯한 기분.

여느 미술관에서 느껴보지 못 한 감정들을 가득 안고 다음 행선지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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