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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catcher Dec 21. 2023

1.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1)

어느 아마추어의 피아노 리사이틀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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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IxxJ'가 불특정 다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게다가 다소 즉흥적으로 결정한다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었거나 실은 남몰래 막연하게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일이었을 확률이 높다. 리사이틀이 그 중 하나였다. 피아노 레슨을 그만두고 나서야 제대로 인지하게 된 피아노 협연과 실내악의 매력은 내 섣부른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었고, 전악장, 모음곡 전체, 특정 작곡가의 곡으로만 이루어진 연주 등은 언젠가 꼭 도전해 보고 싶은 과제로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니기에 협연이나 리사이틀 기회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취미생 레슨을 전공생처럼 진지하게 봐주시는 선생님도 많지 않았다. 물론 나 스스로도 심리적으로 '취미'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고, 그만큼 진심을 담아 열심히 연습하지도 않았다. 


취미, 비전공, 아마추어. 

얼마나 부족한 연습과 실력을 핑계대기 좋은 표현인가. 하지만 이런 게으른 생각에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와 콩쿠르를 통해 만난 분들이었다.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와 모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은 아마추어도 협연과 리사이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엄청난 정보를 올해 얻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기회가 많았다. 필요한 건 내가 그 기회를 얻을 수 있을만큼의 실력이 있느냐,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느냐, 무엇보다 큰 무대에 설 수 있을만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인데, 솔직히 그 어떤 질문에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yes를 외칠 수 있는 날이 쉬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럴거면 차라리 스스로의 부족함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부딪히고 깨지며 한걸음씩 나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리사이틀 신청 양식을 다 채우고서도 한참을 망설이다 마지막 제출 버튼을 누를 때의 심정도 그랬다. 떨어지면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니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 채우면 될 것이고, 감사히도 기회를 얻게 된다면 자신감 한 스푼 얹으며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다. 어느 편이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이르게 기회가 왔다. 실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많지 않은데 쌓아놓은 레퍼토리도 빈약하다. 하필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하며 '어릴 적 콩쿠르나 연주회에서 쳤던 곡은 재탕하지 않는다'라는 혼자만의 원칙을 세웠는데, 하... 벌써부터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도 우선은 최대한 이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프로그램을 구성해 보자. 1시간 정도 연주할 곡의 대부분을 초견부터 시작해야 하니 최대한 빨리 선곡해서 연습을 시작해야 하는데, 리사이틀은 처음이라 일단 막막하다. 무작정 이 음악 저 음악 들으며 전문 연주자들이 어떻게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성했는지 훑어보다가, 일단 현실 감각은 잠시 내려놓고 그저 연주하고 싶은 곡들을 쭉 나열해 본다. 


'보자보자... 예전부터 리사이틀을 하게 된다면 시작은 바흐나 모차르트로 하고 싶었어... 내년에 베토벤 소나타 전악장을 배우기로 했으니 프로그램에 넣고... 다음 달 학원 연주회 무대에 올릴 곡은 1부나 2부 마지막 곡으로 좋겠네. 리사이틀에 오실 지인들이 지루하지 않게 들으려면 많이 알려진 곡도 필요할 것 같고... 볼콤이나 카푸스틴 같은 현대곡은 무리수일까. 남편이 예전부터 듣고 싶어하던 곡도 넣어볼까.'    


그러다 아예 시대별로 소나타를 하나씩 골라볼까, 쇼팽 발라드나 즉흥곡, 슈베르트 즉흥곡, 슈만 성격소품 모음곡...으로만 하기엔 나도 힘들고 관객도 못 들어주지 않을까. 1부나 2부 중 하나는 짧지만 유명한 곡들로만 채워볼까. 그렇게 며칠째 무작정 곡들을 써내려가다 문득 돌이켜보니, 이런... 세상엔 좋은 피아노 곡이 너무 많고 난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잊은 게 분명하다.


"일단 학원 연주회 곡은 포함하고, 베토벤 소나타 전악장은 몇 번 할지부터 정해봅시다. 연습도 우선은 학원 연주회 준비에 집중하는 걸로~ 그나저나 리사이틀 진짜 힘든데..." 


붕 떠 있던 나를 선생님이 땅으로 내려 주셨다. 


그렇게 리사이틀 프로그램 한 줄 채우기에 성공! 

리스트 리골레토 패러프레이즈 (F. Liszt, Paraphrase de concert on Verdi's Rigoletto, S.434)


2023년 12월 21일 기준, 리사이틀까지 241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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