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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무 Nov 01. 2024

이직 6개월 차, 권고사직을 당했다

주니어에게 닥친 예상치 못한 시련

이 글은 권고사직 당일 일기장에 작성했던 글을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다.


어쩐지 오늘 입맛이 없더라니 복선이었을까.

아침도 안먹고 수요일마다 나오는 간식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안고파서 처음으로 샐러드 포케를 반 정도 남긴 것 같다. 그리고는 그냥 하던대로 블로그를 작성하고, 프로젝트로 하는 SNS를 휴일 것까지 예약 발행을 걸어두고, 살짝 틈이 생겼을 때였다. 4시에 인사팀 매니저님이 갑자기 임원진들의 전달사항이 있다며 나를 위층 회의실로 불렀고, 거기에서 갑작스럽게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경영악화 때문이라곤 했지만 혹시 돌려 말하는 것일까 싶어 퍼포먼스가 안나와서 그런거냐, 아니면 입사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거냐 물어봤더니 개인의 문제는 전혀 아니며, 스타트업 특성상 투자자들의 압박이 있으며 결국 경영난 때문이라는 말을 전달받았다. 그러면서 본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한달 치 월급과 실업급여를 위한 권고사직 처리 뿐이라며 그렇게 갑작스럽게 통보를 했다. 날 스카웃해서 데려갈 땐 언제고 1년도 안돼서 이런 통보를 하는 건지 처음에는 너무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화가 났는데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들어간다며 미안하다고 하는 대표님을 보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해버린 것 같다. 처음에는 분위기를 무겁게 잡던 대표님과 이사님도 내가 이직한 지 얼마 안됐는데 이렇게 그만두는게 아쉽다는 말을 하자 태도가 풀리시더라. 그러면서도 당장 오늘까지 (퇴근 5시인데요) 하라는 말에 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알았다고 하고 나왔는데 나에게 스카웃 제안을 주셨던 그 인사팀 매니저님이 눈물을 글썽이시다가 미안하다며 우시는 바람에 나도 눈물이 나와서 조금 울었다.


나오자마자 바로 6개월 간 가장 친했던 동기들에게 급작스럽게 퇴사 소식을 전하고, 올라와 우리 팀원분들과 인사하고 퇴근하기 전 잠깐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팀장님 말로는 이번 건은 정말 급작스럽게 정해진 사안이며, 팀장님도 당일에 내 권고사직 통보를 전달받으셨다고. 그리고 우리 회사가 약 50명인데 그 중 20명 정도가 권고사직을 통보받을 예정이며, 원래 스타트업은 이런식으로 많이 통보한다고도 덧붙이셨다. 10월 3일 개천절을 앞두고 통보받았는데, 나는 휴일 다음날인 금요일에 연차를 써서 아마 오늘 통보받은 것 같다고도 하셨다. 나는 내 퍼포먼스 때문이 아닌가 걱정했으나, 팀장님은 팀이 이미 잘 돌아가고 있었고 나도 잘 하고 있었다는 말을 해주셔서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됐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진심을 전했다. 나는 사실 인사팀 매니저님으로부터 임원진들 전달사항이 있다고 했을 때 살짝 눈치를 챘으며 (권고사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만큼 심각한 일인가보다 했다) 권고사직 자체는 슬프지 않은데, 팀원들이 너무 좋았어서 팀원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전했다. 특히 그 전 직장에서 최악의 팀장을 경험하고 퇴사를 했던 나는 이 곳에 와서 이렇게 좋은 팀장님이 또 있을까 싶을정도였는데... 이 부분이 너무 속상해서 말하다가 조금 울먹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직장은 나에게 첫 이직이고, 너무 잘하려고 하고 무러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과 조심함 때문에 너무 팀원들에게 표현을 안 한 것은 아닌지... 잘하려는 욕심이 너무 과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던 것은 아닌가 지난 6개월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까지 팀장님이 바래다주셨는데, 갑자기 또 동기가 사무실에서 나와 울먹거리며 인사해서 너무 슬펐다.


비록 짧은 기간에 예상치 못하게 퇴사를 하게 됐지만 전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배운 게 많다. 커리어가 갑작스럽게 싹뚝 잘려서 조금 불안하지만서도 이참에 쉬면서 나에게 필요한 공부도 하고, 그동안 계속 가고 싶었던 유럽 여행도 다녀올까 한다.


29살에 3년차인 나에게 이번 일이 큰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닌 그냥 내 전체 커리어에서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해프닝 정도로 끝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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