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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s Mar 18. 2023

가장 기계적인 개체가 가장 인간적이라는 로맨틱한 모순

상실과 재생의 영화 <애프터 양>에 대하여


살아가며 마주하는 순간들을 수시로 녹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장면을 저장하게 될까.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 [Saying Goodbye to Yang(양과의 안녕)]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애프터 양>은 어린 미카를 돌보는 안드로이드 로봇 양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국인 아이를 입양한 제이크 가족은 자신들의 아이 ‘미카’를 위해 중국 문화를 알려줄 안드로이드를 중고로 구입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점차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된 안드로이드 ‘양’은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을 멈추게 되고, 가족들은 그를 고치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양의 기억과 마주한다.


작동을 멈춘 양에게 사회가 건네는 시선은 냉정하다. 모두가 가정용 안드로이드를 새로 구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가족들마저도 고작 기계일 뿐인 양에게 너무 의지했다며, 그가 작동을 멈춘 것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럴까.      


영화 <애프터양>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가 만연한 미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우주선이나 외계인 같은 ‘SF적’ 소재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일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가정용 안드로이드와 함께 살지만 아이의 학예회를 준비하고, 자식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빠른 퇴근을 준비하는 부부.

비현실적인 미래를 그렸던 과거의 작품들과 달리,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은, 결국 인류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 명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애프터 양>의 서사적 구조는 흥미롭다. 이것은 ‘양’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양이 실제로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의 주된 시간은 양이 떠난 후에 남은 자들의 곁에서 흘러가고, 가족들이 양을 회고하고, 양의 사랑을 인지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새겨진다. 


가족들마저도 양의 죽음에 대해 인색해져 가던 나날, 그들은 우연히 양의 기억을 보게 된다. 그 기억은 양이 수많은 시공간들 속에서 자신이 되새기고 싶은 영상들을 저장해 놓은 기억들이었다.

찰나와 찰나를 스치는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양이 포착한 것은 왁자지껄한 파티도 기념일도 아닌, 그저 다분히 일상적이고 돌이켜보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의 흐릿한 순간들이었다. 빨리 오라며 자신을 부르던 가족들, 가족들은 모르는 유일한 양의 친구, 그리고 거울 속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자기 자신의 모습.     


사람들은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는 순간. 양은 부지불식간에 빛났다가 사라지는 찰나의 가치를 알았고 그것들이 모여 ‘삶’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가족들은 양의 기억을 통해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가족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그를 박물관에 박제하여 기증하기로 했던 것 또한 하지 않기로 한다.


비록 양은 떠났지만, 그의 기억을 ‘재생play’함으로써 양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상실을 ‘재생revival’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양이 저장해 두고 지속적으로 재생한 영상, 그의 비밀스러운 친구인 '에이다'의 장면이 테마곡 glide와 겹치며 “I wanna be”가 재생된다. 무언가 되고 싶다고 반복해서 되뇌는 노래 가사를 들으며, 양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묘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던, 자신에게도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양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가장 인간적일 수 있었던 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삶과 사랑과 기억과 자유와 자아를 갈망했던 것이다.    


가장 기계적인 개체가 가장 인간적이라는 로맨틱한 모순, 시대가 발전할수록 잊혀져 가는 ‘유한함’에 대한 정신을 회고하는 <애프터 양>은 떠난 자의 기억으로 사랑을 되새기고, 나아가 사랑의 근원과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다양과 변화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변화는 언제나 상실을 수반한다. 그 커다란 상실과 변화의 파도 앞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가치는, 순간을 기억하고 사랑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기원전 B.C. Before Christ를 지나온 것처럼, 아마 양을 떠나보낸 가족들과 그의 주변인들은 After yang의 시대를 지날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수히 많은 기억과 추억을 남겨둔 채로, 너무나도 빨리 수명을 다해버린 양이 하고 싶었던 말은 아주 간단할지도 모른다.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을 살면서, 충실히 사랑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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