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기억은 기록을 통해 변화한다. 기억과 기록의 관계에서 ‘기록’은 ‘기억’보다 진실하다.
영화 <애프터 썬>은 이러한 기억과 기록의 아름답고도 슬픈 간극을 조명한다. 별거한 아버지와 함께 떠난 휴가, 먹구름 한 점 없는 휴양지에서 소피와 그의 아버지 캘럼은 ‘캠코더’를 통해 수시로 일상을 기록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그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부터 비롯된 ‘기록’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시점의 소피의 입장에서의 ‘기억’이 합쳐져, 허구와 진실, 상상과 기억을 넘나들며 짧았던 그날의 이야기를 파고든다.
영화 속에서 캘럼은 마땅한 직업도 가진 것도 없는 남자다. 또래에 비해 성숙한-하고 싶어 하기도 하는- 소피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다소 엉뚱하지만 다정한 아버지 같아 보이는 캘럼은 혼자될 때 비로소 지독한 외로움, 상념과 마주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에 대한 예고를 통해, 우리는 그날의 기억 바깥에 이제 더 이상 캘럼은 존재하지 않음을, 그는 떠났음을 유추하게 된다.
초반의 영화는 캘럼의 자살충동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갑작스레 달려오는 자동차, 테라스의 난간에 올라선 캘럼, 화면을 가득 채운 “GAME OVER”이라는 단어 등을 통해 영화는 이 안온한 휴가가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음을, 이 휴가에는 희미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알려줄 뿐이다.
캘럼은 숨을 쉬고 싶어 했다. 그는 태극권을 연습하고, 소피가 보기엔 ‘이상한 움직임’을 계속한다. 이것은 자신을 잠식한 ‘어둠의 수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캘럼의 발버둥처럼 보이기도 한다. 호텔의 티브이 옆에 자리한 how to meditating과 tai-chi 책과 같은 것이 캘럼의 숨 막히는 현실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리고, 소피마저도 알고 있는 ‘가난한’ 그의 현실에도 800달러짜리의 카펫을 사는 캘럼. 그는 카펫을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편히 누울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날의 소피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11살인 소피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빨리 성장하고 싶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현재’에서 그날의 기록을 돌아보는 소피는 도대체 어떤 지점에서 그의 아버지가 떠나야 ‘만’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어쩌면 소피는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았다면, 더 많은 것을 알았다면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애프터썬>은 회고에 수반되는 필연적 ‘후회’를 다정한 손길로 더듬는다.
가장 사랑하는 것만큼은 양지바른 곳에 두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럼은 자신의 ‘고통’의 공간에 소피를 데려오지 않는다. 밝은 빛이 켜진 공간에서 책을 읽는 소피, 그리고 바로 옆 화장실에서 피를 흘리며 깁스를 자르는 캘럼. 자신의 어둠에 데려오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빛. 캘럼에게 있어 그것은 소피였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결과. 그러나 그 사이에 빛나는 기억이 있었음을 되새기며 또다시 한 발 나아가게 하는 영화가 있다. 애프터썬이 그렇다. 칼럼과, 소피의 기억이 그렇다. 성사되지 않은 구원이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날의 기억. 서툴고 반짝였고 짧았던 휴가를 떠올리며, 영화 <애프터썬>은 기록을 통해 떠난 이를 기억한다.
빛바랜 기록 속에서 만난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 그렇다고 해서 그날의 휴가에서의 기억과 시간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은 아니다. 지금은 지금이고, 그때는 그때였다. 그래서 그날의 사랑과 기억은 진실될 수 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의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날의 휴가는 영원히 그곳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