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괘상에 따르면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양(陽)의 기운이 최상으로 펼치진 정오에 음(陰)이 발생한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간인 밤 12시경 자(子) 시에 양(陽)이 발생한다. 최고의 순간에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최악의 순간에 희망의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놀라운 지혜다. 이러한 변화의 원리를 감지하면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의 때를 기다릴 수 있다.
좋은 목표를 세웠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의도한 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표는 여건이 무르익고 적절한 기회가 생길 때 절묘하게 이루어진다. 필자가 고시에 합격하거나 사전컨설팅 감사제도를 성공시키는 과정을 보더라도 모든 것이 때가 되고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 이루어졌다.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말이 있다. 새가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의미다.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이처럼 때를 기다리는 것은 중요하다. 이제 막 어둠이 시작되었는데 동이 트기를 벌써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는 것은 낭비적인 삶이 된다. 차분하게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새 동이 터온다. 우리는 좌표 축이 3개 있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가로, 세로 그리고 높이가 그것이다. 이러한 3차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어느 좌표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으나 시간(때)은 통제할 수 없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어 어느 시점이든지 임의로 갈 수 있는 4차원의 세계라면 타임머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그 규칙성과 반복성을 알아차리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난무하는 각종 성공의 법칙이나 리더십 원칙도 ‘때’라고 하는 중요변수를 고려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다. 침착하고 조바심만 내지 않아도 중간은 간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편 필자의 경우 고시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독학으로 사주명리 책을 읽고 그저 막연하게 ‘관록’이 있으므로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명리학이 고시 합격에 필요한 자신감을 주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고시합격 후 사주명리에 관심을 가지고 틈틈이 연구했는데 사람의 기질은 대체로 맞았다. 그때 그때의 운세판단은 어려운데 필자 개인의 경우를 보자면 큰 대운의 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정확했다. 필자의 경우 대운의 흐름을 알고 있어 50세가 되자 직장이나 거주의 변동을 예상했는데 경기도 감사관 응시 제안이 있어 흔쾌히 받아들었다. 당시 경기도 감사관 응시를 제안하던 분도 사주공부를 하던 분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흔쾌히 받아들이니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 운세에 적극 순응하니 경기도 감사관 시절 획기적인 우리나라 감사제도의 변화를 이끄는 성과가 발생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는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자. 두려움 속에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는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주변 환경에 즉시 적응하려 할 것이다. 환경정보를 두뇌 속에 신속하게 입력하여 생존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유전자를 변화 또는 적응시킨다고 본다. 세 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세 살적 버릇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태어날 때의 환경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사주팔자는 ‘갑자(甲子)’와 같이 두 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연월일시 4개의 요소로 구성된다. ‘갑(甲)’과 같은 첫 글자를 천간(天干), ‘자(子)’와 같은 뒷 글자는 지지(地支)라고 한다. 만약 음력 1월에 태어나면 태어난 달의 지지가 인(寅)으로 표시된다. 만약 낮 12시에 태어나면 태어난 시의 지지는 오(午)가 된다. 이와 같이 태어난 달과 시간은 지지(地支)를 통해 그대로 반영된다. 겨울생과 여름생, 낮에 태어난 사람과 밤에 태어난 사람은 그 성향이 각각 다를 수 있다. 특히 계절은 신생아에게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태어난 달과 시간의 지지를 제외한 나머지 사주의 간지 6개는 우주운동의 규칙성과 반복성에 기반하여 미리 정해진다. 우주탐험과 같은 어려운 일들이 가능한 것은 우주는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규칙성을 통해 간지가 정해지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운세는 크게 보면 30년 단위로 바뀐다. 지지는 12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4계절로 나누면 계절당 3개의 지지가 배당된다. 대운은 각 지지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10년으로 계산한다. 대략 50년 정도 지나면 정반대의 운이 작용한다. 즉 겨울생은 여름의 환경이 되고 여름생은 겨울의 환경이 된다. 여기에 인생 반전의 묘미가 있다. “초년에 고생하나 나중에 성공하겠다”와 같은 운명예측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겨울의 수(水)기가 강하므로 사주에 화기가 어느 정도 있어야 좋은데 화기가 부족할 경우 매사가 잘 풀리지 않고 힘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중년이 되니 사주의 운세가 여름으로 바뀌고 부족한 화기를 얻어 인생 역전이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반대로 겨울생이 화기가 적정한 경우 초년에는 잘 나가다가 운세가 여름으로 바뀌면 과다한 화기로 인해 인생의 애로가 많아진다.
물론 개인의 사주팔자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운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지역, 국가의 운세 등 더 큰 구조적인 운세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자. 이러한 국운의 변화는 개개인의 삶을 통째로 바꾸므로 개인의 운세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이러한 국운의 변화 등 다른 운이 변하므로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개인의 타고난 기질과 향후 운의 방향은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사주명리 공부를 통해 얻게 되는 가장 좋은 점은 신살 등을 언급하며 겁을 주는 엉터리 사주쟁이나 점쟁이의 거짓말에 속지 않게 된 것이다. 자연과 운명은 사람의 바램과 달리 무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만 자연의 규칙성과 반복성을 미리 알고 대처하면 된다. 예를 들어 여름에는 태풍이 발생하므로 미리 침수에 대비하고 겨울이 오면 추우므로 미리 두툼한 옷을 준비해야 한다. 이미 자연은 규칙적인 패턴을 보여 주었는데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둔한 것이고 인생이 험난하게 된다. 자연도 우주의 일부이고 그 자연 속에 있는 인간도 우주의 일부이다. 그래서 자연에 적용되는 법직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연에는 ‘춘하추동’의 계절변화가 있다. 이에 익숙한 인간은 스토리 구성에 있어 ‘기승전결’을 당연하게 여긴다. 인간의 심리도 이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슬픔의 경우를 보자. 처음 발생했을 때 슬픔이 씨앗처럼 발생했다가(봄) 점점 더 커져 극심한 아픔으로 번진다(여름), 그런데 어느 정점의 순간이 지나면 갑자기 반전이 발생하여 슬픔이 승화되고(가을) 새로운 희망의 씨앗으로 저장(겨울)된다.
한편으로 사람이 태어난 시점과 장소는 자연이 그 사람에게 주는 중요한 정보이다. 이러한 정보를 잘 분석해서 사람의 기질과 인생의 행로를 미리 예견하고 최대한 지혜롭게 살고자 그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 사주명리학이다. 어려운 일에 부닥치는 경우 신에게 기도하여 은혜나 축복, 또는 기적을 바라기가 쉽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격물치지’의 정신으로 자기의 기질과 운세의 흥망을 알아 내고 이에 따라 인생행로를 설계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노력이 느껴진다. 다만 유의할 점은 이러한 출생정보를 바탕으로 운명이 정해져 있다거나 매사의 길흉사를 맞출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은 경계해야 한다. 계절은 매해 반복되지만 반복성이 있다고 해서 매해 동일한 것은 아니다. 계절은 매해 다를 뿐만 아니라 항상 새롭다.
사주명리를 통해 자기의 강점과 유의점을 알아내고 인생행로의 순환사이클을 인식하면서 조심스럽게 미리 다가올 변화를 준비하고 변화에 적응한다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주팔자 해석을 통해 자기 자신의 기질을 알게 되는 점도 좋다. 자기의 성격이나 태도가 타고난 기질에 따른 것이므로 자신을 책망할 이유가 없다. 다만 자기 기질의 장단점을 잘 알아차리고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면 된다. 한발 더 나아가 그동안 잘 안 풀렸던 시절과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 원인이 운의 행로에 따른 영향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 마음에 위안도 생긴다. 자기의 인생이 저주받은 것처럼 느꼈는데 운이 나빴을 뿐이고 향후 운이 바뀌면 죽을 것만 같은 어려움도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