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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JY Apr 11. 2023

돌 촬영 - 찬란했던 1년의 순간들을 마음껏 축하했다

다소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던 3월 중순, 커다란 이벤트 중 하나인 돌 촬영을 하기로 했다. 돌까지는 아직 두 달 정도 남았지만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촬영이 힘들다는 말을 들어 조금 빠르게 스튜디오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한복 입고 촬영하는 것에 로망이 있어 한옥스튜디오로 알아봤고 북촌에 있는 고이스튜디오라는 곳으로 결정했다. 나의 조건은 '한복만 입으면 됨' 이거 하나였기 때문에 기타 조건들은 전부 아내가 비교해 최종 예약을 했다. P형 인간인 나보다 J형 인간인 아내가 더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권을 위임해 주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권을 위임해 주는 척 귀찮은 일들을 아내에게 넘겨버렸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스튜디오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스튜디오가 컸다. 그냥 돌상 하나만 조그맣게 있을 줄 알았는데 준비공간도 있고, 야외와 실내도 나눠져 있었다. 거기다가 본격적인 야외촬영은 지금 보는 건물 야외공간이 아닌 여기서 조금 차를 타고 이동해야 나오는 별도의 공간에서 한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벌써 지쳤지만 오늘의 주인공인 아이를 위해 열심히 촬영해 보기로 했다.



한복을 고르고,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메이크업도 받았다. 분명 아내가 먼저 메이크업을 받기 시작했고 아내는 아직 반도 안 끝난 거 같은데 나는 이미 끝나있었다. 사진작가님은 아이와 친해져야 사진 찍을 때 편하다면서 다양한 스킬을 구사하고 계셨다. 작가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계속 울먹울먹. '잘 웃어야 사진이 잘 나올 텐데'라는 걱정을 하며 나도 아이 달래기에 동참했다.



실내에서 아이 독사진 + 아빠와 아이 투샷 사진 등을 찍고 나니 아내도 메이크업이 끝났다. 원래대로라면 실내에서 촬영을 더하고 야외촬영을 해야 하는데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단 야외를 먼저 하기로 결정했다. 만약 야외촬영을 하고 나서도 아이가 계속 울고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으면 오늘은 촬영을 접고 다른 날 다시 촬영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불안해지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이의 마음에 달린 것을. 어차피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마음은 한결 차분해졌다.



작가님 차를 타고 야외촬영지로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화두는 단연 코로나. 작가님이 거의 20여 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주변 한옥스튜디오들도 슬슬 문 닫는 곳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야외 촬영지에 도착했다. 다행히 밖으로 나오니 아이 컨디션이 실내보다는 좋아져서 꽤 여러 컷을 찍었다. 사진작가님도 힘이 나셨는지 내친김에 남은 컷들도 찍어보자고 파이팅 넘치게 말씀하시고 실내로 복귀하였다.




아이가 언제 또 컨디션이 나빠질지 모르기 때문에 필수 사진들부터 찍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찍은 것은 돌잡이 사진! 두구두구두구 과연 어떤 것을 집을까 궁금해하며 아이의 선택을 기다리는데 어? 거울을 집어든다.




가까운 곳에 돈도 있고 판사봉 같은 것도 있는데 굳이 제일 멀리 있는 거울을? 그것도 뒷면으로 엎어져있던 건데? 사진작가님이 보시더니 "예술 쪽에 소질이 있겠네요"라고 하신다. '예체능은 길이 험난하단다. 다시 한번 골라보자'라고 생각하며 한번 더 돌잡이를 시켜봤는데,





이게 뭐지? 처음엔 약과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약과는 아니고 바느질 모음 같은 것이었다. 손재주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한번 더해도 예체능 쪽 영역이 나오다니! 하긴 요즘은 크리에이터의 시대라고 하니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촬영 전까지만 해도 그냥 하나의 TASK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찍고 나니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돌 사진을 찍는 오늘. 이건 그냥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지난 1년간 아이와 함께 지내온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이 농축되어 만들어진 소중한 시간의 결실이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마음껏 축하했고 아이는 마음껏 축하받았다.




집에 오는 길에 동생한테 "오늘 돌잡이 때 거울이랑 무슨 바느질 같은 거 잡았어. 돈 안 잡네"라고 하니 "돈을 왜 잡아. 돈은 아빠가 벌면 되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또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찬란했던 오늘 하루도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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