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를 만들어줬다.
“이열 뭐 아주 20대구먼?”
반년 사이 Y는 머리를 싹둑 잘라 단발이 되었고 나는 폭탄을 때려 맞은 듯 튀겨진 머리를 하고 있다. 국내라면 큰 집게핀으로 쑥 잡아 올려 조금이라도 더 정갈한 모습을 갖추고 돌아다닐 텐데 해외에선 무조건 기존쎄 이미지라며 혼자만 알아주는 콘셉트로 풀어헤치고 있었던 것이다. (마디리드 #0 참조) 그럼에도 추노 대길이나 해리포터 해그리드가 아닌 젊은이로 봐주니 그저 고맙다.
도착한 날은 월요일이었지만 마드리드에서는 성요셉 대축일* 대체휴일로 연휴란다. 꿀 같은 연휴에 이방인 맞이 하느라 스트레스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솔직히 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휴식도 좋지만 오랜 친구와의 시간은 귀하고 의미있기에 이런 기회는 있을 때 잡고 누려야 한다는 것을 친구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성요셉 대축일: 성모 마리아의 배필인 성 요셉을 기념하는 날. 한국에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이라고 부른다.
“도오차학!”
그래도 한 번 와 봤다고 주변이 모두 익숙해서 그게 또 기분이 좋아 도착이라는 말도 내가 먼저 외친다. 작년처럼 보조 열쇠 한 뭉치를 전달받고 나무 문을 어기영차 밀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니 이제 진짜 유럽에 와 있음을 느낀다. 한국은 대부분의 것들이 모던하고 신속하게 운영되는 것이 장점이라면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클래식한 것에 장점이 있다. 그래서 묵직한 열쇠를 요리조리 돌려 문을 여는 것이나 목재로 된 엘리베이터의 문을 직접 밀면서 탑승하는 것에서 거추장스러움보다 숭고한 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서유럽을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대강대강 짐을 풀고 따뜻한 물로 솨아악 샤워를 하니 장거리 비행으로 욱신거리던 몸이 풀린다.
킁킁
'어?'
킁킁킁
콧 등의 온갖 근육을 다 동원해도 답은 하나다.
진짜다!!!!
거실 식탁 한가운데 진짜 된찌 한 상이 떡 하니 차려져 있다. 마드리드의 햇살이 스며 들어오는 거실 한가운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된찌라니. 이건 뭐 어느 호텔 스위트룸에 그 어떤 룸서비스 보다 더 완벽한 게스트 취향저격 서비스가 아닌가. 감동의 돌고래 소리를 연신 뿜어내니 친구가 입을 틀어막으며 그냥 좀 먹으란다. 부끄러워하니 오케이. 닥치고 일단 한 술 떠 본다.
"키야~"
통제되지 않은 돌고래 소리가 다시금 뿜어져 나온다.
원래 첫날은 앞으로의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구상하고 저녁에 동네에서 외식이나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란후에스(Aranjuez) 코스를 이미 다 짜 두었다 한다. 최근에 브라질에서 들어온 직장 동료 한 분도 함께 한다 하니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일정에 없던 근교여행까지 정말 땡큐쏘베리머취다.
“안녕하세요, K라고 합니다.”
(다음 편에 계속)